벤 포니
내가 대학생 때 작은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중요한 교훈이다. 나는 그때부터 맛있는 맥주만 마시기로 결심했는데, 6년 전 한국에 온 뒤부터는 맛있는 맥주를 찾기가 힘들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맥주를 마시려면 A회사와 B회사,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엔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원샷’은 아마도 물 같은 라거 맥주를 계속 마시기 지루해 생긴 문화일지도 모른다. 빨리 취하고 싶은 마음에 술 마시는 과정을 단축하고 싶었나 보다. 맥주와 소주를 섞은 ‘소맥’ 역시 술을 더 빨리 취하게는 하지만 맥주 맛을 충분히 느낄 순 없다.
맥주를 마시는 건 술에 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맥주는 적당히 마시면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어 사회성을 형성하는 데 좋다. 무엇보다 맥주의 맛을 느끼며 즐겁게 마시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맥주를 마시는 일이 맥주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돋우는 것이면 좋겠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이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몇 주 전 판교의 어느 조용한 동네에 있는 ‘더 부스’라는 크래프트 비어 공장에 갔다. 그 공장은 규모는 작지만 매일 양조한 맥주를 서울에 있는 7개의 술집에 보낸다. 다른 크래프트 비어 브랜드처럼 ‘더 부스’ 역시 라거보다 더 미묘하고 복잡한 에일, 스타우트 그리고 IPA 맥주를 만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마시던 맥주만큼 맛있고 또 다양한 맛이 있어서 아주 좋았다. 운 좋게도 나는 그곳에서 아직 발매되지 않은 샘플 맥주도 몇 가지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과 민트 IPA 맥주, 커피 맥주 등 다양한 맥주를 즐겁게 마셨다.
크래프트 비어는 대기업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그리고 맥주를 ‘원샷’으로 마시는 대신 맥주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시기에 더없이 좋다. 요즘 크래프트 비어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대기업 맥주 브랜드도 새로운 맥주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세계의 유명 맥주 회사들이 대부분 그렇듯 브랜드 인지도는 높으나 다양하지는 않다. 크래프트 비어 회사는 규모는 작지만 강점이 더 많다. 큰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다양하고 특이한 맛을 지닌 맥주를 적은 양이나마 실험적으로 만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 맛의 맥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갔는데 다양한 종류의 크래프트 비어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여러 종류의 맛있는 맥주가 쌓여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런 변화는 아주 좋은 예다. 하지만 이 작은 맥주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여러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크래프트 비어 회사들의 술 판매를 제한하는 법은 10년 전에 비해 완화됐지만 아직도 대기업에 비해 제약이 많은 편이다.
크래프트 비어 산업을 발전시키면 한국의 맥주 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와 BBC뉴스에 따르면 앞으로 크래프트 비어는 각 나라의 전통적인 술처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소주와 막걸리에 이어 크래프트 비어가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 벤 포니 씨(28)는 200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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