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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검정제?국정제? 국사 교과서,제3의 길 찾아야

입력 | 2015-10-29 03:00:00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오래전 KBS의 ‘이 한 권의 책’ 프로그램에서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추천한 적이 있다. 고난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 도의문명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 것이라는 함 선생의 예언자적 외침은 언제나 내 가슴을 친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역사적 경험을 가진 역사의 당사자이고, 더 나아가 역사 자체를 만들어가는 주역이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적 삶이 교과서에서 어떻게 기술되고 가르쳐지는지 예민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국사교육이 되도록 할 궁극적 책무도 있다.

시세대국을 읽지 못하고 집안싸움으로 지리멸렬하다가 나라까지 잃었던 근세사의 교훈을 찾지 못하고 국사교육이라는 것이 국민을 결집하기보다 분열과 혼란을 부추긴다면 그런 국사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국사교육은 이 나라는 가치 있는 나라라는 긍정적 역사의식과 지난 반세기에 이룩한 성취가 보여주듯이 국민이 일체감을 가지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국사교육은 파탄에 빠졌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자학적, 분열적 내용 논란으로 ‘교과서 파동’이 있었고 2014년 ‘고교 한국사’ 검정 과정에서 갈등 양상이 더욱 증폭돼 마침내 정부가 국정화에 나선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검인정제가 더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더 나아가 정부가 여론에서도 유리할 것이 없는 국정화 카드를 꺼낸 것은 담합으로 교과서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국사 기득권 세력의 반 검정제적 시장 교란 현실과 그 교과서들이 기저로 삼고 있는 역사관과 국민 일반의 역사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어 이를 방치하면 감당할 수 없는 국론분열의 위기에 부닥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라를 휩쓸고 있는 국정화 찬반 광풍을 멎게 하는 해법은 검정제와 국정제 사이의 양자택일로 결판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일단 현행 검정제를 온존시키는 것은 국론분열의 평행선을 달리게 하는 점에서 해법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의 국정제를 영구 대안으로 삼을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내일’이라는 대의를 놓고 모두가 상생하는 제3의 대승적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책임 있는 주체들이 상대방에 대한 완승, 완패의 자세를 버리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국사교육의 기본 틀을 시간에 구애받음 없이 필요하고도 충분한 공론 과정을 통해 마련하는 국론통일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국정은 이 작업이 완결될 때까지 과도기적 한시적 조치로 고려돼야 한다. 자유주의 사회가 우월한 근본적 이유는 개방적인 토론으로 구성원들을 보다 현명하고 책임 있는 주체가 되게 하는 데 있다. 국사 검정제를 열망할수록 그것은 국사교육의 합의 기반을 촉진시키는 에너지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