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독일인 곰신… 이별 걱정하는 남친에게 동영상 선물”
《 겨울이 오려면 몇 달 남았는데 벌써 바빠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군대 간 아들과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죠. 야외에서 훈련받고 보초 서는 아들과 연인을 위해 보온 제품과 간식거리를 챙깁니다. 과거에는 ‘추운 날씨에 고생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머님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대 생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피부를 걱정하며 외부 화장품을 쓰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군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 좀 부쳐 달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는 군인 아들의 전화를 피하고 싶다는 어머니도 있지요. 2015년 한국의 ‘신(新) 군대 뒷바라지’ 풍속도인 셈입니다. 이에대해 정작 군인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달라진 군대 뒷바라지 풍속도에 얽힌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아들이 한 달에 1, 2회 군대에서 컴퓨터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필요한 책을 주문해 담아 놓으면 내가 나중에 들어가 결제해요. 그러면 책이 바로 부대로 배송되거든요. 주로 법학, 역사, 철학 관련 책이에요. 아들이 제대한 후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할 생각이거든요. 아들이 보급병이라 무거운 짐을 옮길 일이 많아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관절에 좋은 약을 보내요. 또 목장갑도 자주 보내지요. 전체 비용은 5만 원 정도로 많이 들지 않지만 항상 곁에 있는 것처럼 신경이 쓰여요. (51·공무원)
―아들 녀석이 피부가 민감하다고 하네요. 훈련받을 때 얼굴에 바르는 위장크림이 있는데 군대 제품은 좋지 않대요. 어쩌겠어요? 면회 갈 때는 꼭 위장크림을 사 간답니다. 올해 국군의 날에는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위장크림을 하나 구매하면 하나 더 주는 ‘1+1’ 행사를 했어요. 잘됐다 싶어 군대 동기들이랑 함께 쓰라고 위장크림을 왕창 주문했어요. (49·여·주부)
―아들이 특수부대에 있는데 6개월 동안 면회와 휴가가 전혀 없던 기간이 있었어요. 지난해 동료 병사들로부터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한 뒤 사망한 ‘윤일병 사건’이 터진 무렵이었지요. 그때 너무 걱정돼 몰래 부대에 간 적이 있어요. 우리 아들은 자정부터 오전 2시까지 위병소에서 보초를 서는데 그 시간에 맞춰 갔어요. 원래 안 되지만, 연어를 좋아해서 연어 초밥을 싸서 전해주면서 5분 동안 얼굴 보고 돌아왔죠. 아들이 안쓰러웠어요. 그 후 다행히 ‘임시 면회’가 허용된 적이 있었죠. 아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 앉으라고 전기장판을 갖고 가서 깔고, 소고기를 구워줬네요. (51·여·주부)
군대에서 믿음직한 남자로 성장해 대견
―저는 아들을 크게 도와준 적이 없어요. 지금 병장인데 그동안 면회를 한 번만 갔어요. 간식 보내줄 생각도 안했네요. 해병대라 규율이 엄격한데도 아들은 힘든 내색 없이 훈련을 견뎌냈어요. 아들이 듬직하고 다 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들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서 통역병으로 활약했어요. 통역병을 정말 하고 싶었는지 혼자 밤새 영어 공부 하고, 나중에는 입이 아파 말을 못할 정도로 인터뷰 연습을 했어요. 아들은 사단에서 1등으로 뽑혀 가고 해병대 본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아 원하는 곳으로 배치 받았어요. 아들이 군 생활을 혼자서도 잘해 나가고 있구나 싶어서 저는 걱정 안 합니다. (51·여·주부)
―군대 뒷바라지요? 군인인 저는 부모님이 면회 온 적이 없어요. 택배 받은 적도 없는걸요. 부모님은 ‘성인 되면 독립하라’고 하세요. 제 나이가 되면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오기 전에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했고, 술집이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도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군대 뒷바라지를 못 받는다고 섭섭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른이 됐으니 제가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어요. (21·군인)
‘군대이별’도 사랑을 막을 순 없어
―남자친구가 군대 간 지 5개월 됐어요. 3개월이 지나 저는 홍콩에 교환학생으로 왔죠. 처음엔 군대 간 연인에게 헌신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각종 선물을 포장해 보내는 게 시간 낭비 같았죠. 그래도 홍콩에 오기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한 번 챙겨주자고 마음먹었어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과자를 조금씩 묶어 포장한 후에 ‘사랑한다’는 문구의 메모를 붙여 보냈어요. 남자친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감동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어요. 남자친구는 그 후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전화해요. 그래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23·여·대학생)
―전 27세의 독일 여자예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죠.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남자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남자친구가 군대 간 지 7개월 됐죠. 주변에서는 ‘유학까지 왔는데 시간이 아깝다’, ‘(남자친구가) 제대하면 다른 여자 만날 거다’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전 그런 말들을 믿지 않아요. 남자친구를 기다릴지 말지는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거든요. 다들 저를 이해 못하니까 제 생각을 알리려고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어요. 저도 다른 한국 여자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군에 보낸 것일 뿐 나이나 국적은 상관없다고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조회수가 7000건이 넘었어요. 응원 댓글도 많이 달려 힘이 나요. 저는 남자친구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지금 서로 많이 좋아하고 행복하니까요. 남자친구는 제가 떠날까봐 불안해하죠. 걱정하지 말라고 끝까지 기다린다고 안심시키고 있어요. (27·여·대학원생·독일인)
―페이스북에 ‘곰신 그룹’이라는 모임이 있어요. 가입자가 3만 명도 넘어요. 어떤 선물을 보내는 게 좋을지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죠.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99.9%가 ‘왜 기다리느냐’며 헤어지라고 해요. 스트레스를 받고 흔들리죠. 하지만 모임을 통해 내 마음과 의지를 다지죠. 실제로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깊어졌어요. 이젠 주변 얘기에 휘둘리지 않죠. 제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22·여·대학생)
오피니언팀 종합·임세희 인턴기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