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정권 바뀔 때 생각하라”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아 누구보다 유신독재에 비판적인 그는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전 긴급 의원총회에서 마지막 발언자로 나섰다. “정무수석 때 대통령을 모시고 시정연설에 와 봤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국정화를 반대해도 본회의장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반응은 썰렁했다.
2003년 10월 13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때 한나라당 의원 수십 명이 기립하지 않았고 연설이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퇴장할 때도 고작 40명만 기립했다.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비리를 겨냥한 일종의 시위였지만 박 대통령의 2013년 첫 시정연설 때부터 부메랑이 됐다. 유 의원은 “여야가 서로 정권이 바뀔 때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은 의총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오기 직전 퇴장했다. 그리고 밖에서 강창일 의원과 본회의 상황을 모니터로 지켜봤다. 유 의원은 “당인(黨人)으로서 시위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앉아 있을 수 없어 퇴장한 것을 ××신문이 ‘잘한 일’로 쓰는 바람에 난처하게 됐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배 의원들에게 말발이 영 안 서게 됐다”는 말도 했다.
여야 정치권에서 불붙은 역사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야당이 좌편향 교육을 고집하는 것은 북한 체제에 의한 적화통일에 대비해서”라고 포문을 연 이후 여당의 당직자들이 앞다퉈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다. 야당도 지지 않고 이종걸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을 무속인에 빗대 비난한 데 이어 ‘친박 실성파’ 같은 잇단 막말로 반격하고 있다.
정청래 ‘친노 결집’ 나섰나
‘친노의 대포(大砲)’를 자처한 정청래 최고위원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며 “노 대통령을 아우성 속에 탄핵시킨 정당은 예의가 있었나”라며 여당을 공격했다. 그가 친노 결집의 신호탄 같은 ‘노무현 탄핵’까지 언급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역사전쟁이 격화할수록 친노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외눈박이 정치를 질타하는 ‘엽기 유인태’의 야당 내 설 자리가 좁아 보인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