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4년 6월 초판이 나왔다. ‘해전사’는 1979년 10월, ‘1950년대의 인식’은 1981년 3월에 각각 제1판이 나왔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 시절 이런 책들이 젊은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국정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한 현대사와 현실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이었다면 그런 책에 가벼운 지갑을 털진 않았을 것이다. 학교 앞 다방 커피가 200원이던 때 ‘해전사’는 4000원이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뒤쪽 표지엔 “여기에 우리는 혼탁한 정치의 기류를 고발하는 양식과 지성의 용기를 본다”는 당시 노재봉 서울대 문리대 교수의 평이 실렸다.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학자 때 좌경서적을 칭찬했을까. ‘해전사’ 필진인 김학준, ‘1950년대의 인식’ 필진인 한승주 김대환 같은 학자들도 이념적으로 치우쳤다면 정부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책들이 모두 진실만 담은 것도, 뛰어나게 훌륭한 것만도 아닌데 오히려 정부의 통제가 특별한 책으로 만들었다. 그걸 읽었다고 다 의식화된 것도 아니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