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암 환자 4148명의 세포와 조직이 저장돼 있다. 남도현 단장이 미래 맞춤형 암 치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저장장치를 점검하고 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2013년 12월 당시 65세 여성인 조 씨의 머리에서 종양 여러 개가 발견됐다. 그것도 치료가 가장 어렵다는 악성 종양인 교모세포종 뇌종양이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14개월 남짓. 2년 이상 생존율은 약 20%. 합병증이 많고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재발이 쉽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조 씨는 종양이 이미 뇌 중앙까지 퍼져 말기에 해당됐다.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의식도 흐릿했다. 남 교수는 “보통의 뇌종양 환자처럼 치료해서는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보호자에게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 아바타 시스템을 처음 가동
남 교수는 보건복지부 지원 속에 난치암 정복을 위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연구해 왔다. 그 결과 환자의 암 덩어리를 쥐에게 주입해 환자와 몸 상태가 비슷한 ‘아바타 마우스’를 만들어, 여러 항암제들을 사전에 시험해 보는 아바타 스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자의 유전체(세포 조직) 정보가 쌓이는 경우일수록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특별히 잘 듣는 항암제 정보가 축적되는 시스템이다. 2013년 당시는 암 환자 30명의 유전체 정보만이 저장된 상황으로 초기 단계였다.
남 교수는 일단 응급수술을 통해 조 씨의 머리에서 지름이 3cm 이상인 종양 3개를 먼저 제거했다. 그리고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시켜 4주 만에 오른쪽 뇌에서 제거한 암 덩어리에 특히 효능이 있는 항암제 3개를 찾아냈다.
문제는 3가지 항암제 모두 폐암 환자에게만 승인된 약이었다. 뇌종양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 허가를 받아 임상시험 형태로만 약을 투입해야 한다. ‘환자에게 이 약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남 교수의 요청에 공감한 식약처는 사용을 허가했지만,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을 투입해서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약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제약사들이 약 제공을 꺼렸기 때문이다. 남 교수의 설득 끝에 다국적 제약사 B사가 고가의 폐암용 항암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 뇌종양 환자에게 폐암용 항암제 투여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 씨의 암 덩어리들은 종양마다 유전적 특징이 달랐다.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낸 B사의 항암제는 오른쪽 종양에는 큰 효과가 있었지만, 왼쪽 종양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남 교수는 “당시 왼쪽 종양에도 효과가 있는 약을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냈지만, 약을 제공하는 제약사를 찾지 못했다”며 “맞춤형 치료에 대한 데이터가 조금만 더 축적됐어도 제약사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한이 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올해 1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들은 남 교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조 씨의 남편은 “보통 뇌종양 환자들은 의식 없이 지내다 간다는데, 아내는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다 갔다. 그래도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은 것 같다”며 감사해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난치암 환자 4148명의 유전체 정보(암 조직, 세포)가 저장돼 있다. 물론 조 씨의 유전체 정보도 들어 있다. 이 중 573명은 아바타 스캔을 통해 유전체 정보에 맞는 맞춤형 항암제 정보를 얻어냈다. 앞으로 이들과 비슷한 유전체 정보를 갖고 있는 암 환자들은 맞춤형 약을 쉽게 얻어낼 수 있다. 아바타 시스템은 뇌종양 환자뿐 아니라 폐암, 췌장암, 재발된 위암 환자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미국(MD앤더슨 암센터),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난치암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질환별로 1000케이스 정도가 축적되는 2020년 이후에는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가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조 씨는 이런 정밀의료가 현실에서 시도된 첫 환자”라며 “조 씨와 같은 환자들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난치암 극복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인 모를 두통 지속, 시야 좁아지면 뇌종양 검진 필요▼
전문가들은 뇌종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인을 알기 힘든 두통이 이어지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청각·후각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 뇌종양의 전조 증상이 있다는 것.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신경외과 교수)은 “뇌종양인데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착각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거나, 냄새를 잘 못 맡아 이비인후과를 가는 환자들이 있다”며 “해당 과에서 특별한 진단을 받지 못할 경우 신경외과를 찾아 혹시 모를 뇌종양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