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
이제 제 아버지도, 또 어머니도, 용갑 큰 삼촌도 다들 세상을 뜨셨습니다. 이제 용만 삼촌과 제가 한반도에 충남 서산 태안의 광산 김씨 문중 대표로 남은 셈입니다.
6·25전쟁에서 용케 살아남으신 뒤 그곳 북한에서 김일성대학 다음 가는 K대 교수를 지내셨다지요? 우리 문중에서 교수를 셋이나 냈으니 지하의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일입니다. 아버지가 제 외가가 있는 전북에서 학장·대학원장을 지내셨고 저도 언론계 퇴직 뒤 서울 어느 사립대 객원교수로 다년간 강의했습니다.
삼촌! 이제 할아버지도 그만 미워하십시오. 돌아가시기 전 큰 화상을 입어 고통이 막심했는데 문병 온 맏며느리, 곧 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네 시모 생전에 잘못한 게 많다.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저는 삼촌이 젊은 소실에게 마음 빼앗긴 지주 아버지를 증오한 끝에 공산주의로 돌아선 건 아닌지 가끔 상상하곤 합니다. 그래서 더 연민의 정이 솟아오릅니다. 삼촌! 이제 남북의 모든 이들이 진정 화해의 길로 들어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둘이 서둘러 만나야 합니다. 금강산에 시급히 상설 면회소를 두도록 삼촌은 김정은 제1비서에게, 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원할 걸 제의합니다.
김덕중 한국정치문화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