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왕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 장애인 인식개선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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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 변호사가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법관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초의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 변호사(37·변호사시험 1기)는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가진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연’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과정에서 겪은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는 2004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점차 시력이 나빠져 학업을 포기했다. 지인에게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기는데, 법조인이 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로스쿨에 도전했다.
김 변호사는 “텝스 시험은 듣기평가만 풀고 독해는 다 찍을 수밖에 없었다”며 “다행히 서울대 로스쿨 사회적 약자 전형에선 영어 성적을 필수요건으로 두지 않아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 법학적성시험을 음성형 컴퓨터로 치르지 못했거나, 로스쿨에서 영어 성적을 필수로 요구했다면 변호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새로 만들었던 기표대 얘기도 꺼냈다. 새 기표대는 기존 기표대가 폭이 좁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들어가 투표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라 폭이 넓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표용 받침대가 휠체어 오른쪽에 있어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기표해야 했다. 김 변호사는 이 기표대가 상체를 틀지 못하거나 오른손 혹은 양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은 혼자 투표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해 디자인 개선을 이끌어냈다.
김 변호사는 “양손을 못 쓰는 한 장애인이 이전 기표대에선 발로 투표를 했는데, 새로 바뀐 기표대에선 혼자 기표를 못 하게 됐다”며 “장애인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데 기표대 환경에 따라 능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강의를 시작으로 다음 달 21일까지 전국 11개 법원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에 관한 강연을 이어간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