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 5부-화훼영모’ DDP서 2016년 3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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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화가 변상벽의 ‘국정추묘(菊庭秋猫)’. 인물 초상에서 다져진 디테일 표현 역량을 영모화에 그대로 드러냈다. 꼼꼼히 살펴보면 눈동자의 색조, 눈꺼풀과 수염 끝 부분, 귀 안쪽 실핏줄 등의 세부를 얼마나 치밀하게 묘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서예와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고려 31대 공민왕은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로도 손꼽힌다. 조선시대 역사학자 이긍익은 저서 ‘연려실기술’에서 그의 그림에 대해 “파리 대가리만큼 작은 인물을 그렸는데 갓, 적삼, 띠, 신을 모두 갖추고 있어 정묘하기 짝이 없다”고 찬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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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1대 공민왕이 그린 ‘이양도(二羊圖)’. ‘천산대렵도’의 부분화와 함께 공민왕의 그림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주자학이 도입된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는 중국 남방 화풍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 시기의 김시, 이경윤, 김식 등은 널찍하고 커다한 뿔을 가진 남중국 물소를 그렸다. 이황과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정립한 뒤에는 조속, 정선, 심사정이 조선 땅의 동식물을 우리 방식으로 생생히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변상벽, 김홍도에 이르러 절정을 맞았지만 조선 말 청나라 문인화의 생략 기법이 도입되며 화훼영모도는 차츰 섬세한 맛을 잃어갔다.
담벼락 낙서를 연상시킬 만큼 사실성 떨어지는 그림과 한참을 뜯어봐도 지루하지 않은 세밀화가 섞여 있는 건 이런 까닭이다.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이’ ‘변닭’으로 불렸다는 변상벽(1730∼1775)의 ‘국정추묘(菊庭秋猫·국화 뜰의 가을 고양이)’와 ‘자웅장추(雌雄將雛·병아리 거느린 닭 한 쌍)’는 구석구석 눈길 옮겨가는 디테일마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쉬운 건 작품이 전하는 감흥을 반감시키는 전시 공간이다. 어색한 동선(動線)과 흐리멍덩한 조명이야 이왕 지어진 시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관람객을 감시하듯 분주히 따라다니며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울려대고 사적인 전화 통화까지 하는 관리직원들은 개관 1년 반을 넘긴 DDP가 아직 공간 운용의 세련미를 갖추지 못했음을 확인시킨다. 허물어진 인장 모서리, 세월에 흩어져 변색된 안료의 흔적을 가만히 붙어 서서 헤아리기 어려운 형편이 한없이 아쉽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