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의 위안부 해법,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사실 이젠 대통령의 가슴에서 떼어내 차가운 머리로 장기전 준비할 때 인류보편적 인권문제로 접근하며 구체안 만들어 제시하고 국내 의견 통합에도 노력해야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인 납치문제만큼 중요하다 일본은 교섭에 속도 내자는 약속, 립서비스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심규선 대기자
그래도 우리로서는 실망이 더 크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대가 너무 높았다’는 걸 확인했고, 일본은 ‘버티면 된다’는 걸 증명했다고나 할까. 어떤 평가를 하든 이번 정상회담 결과는 우리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 교정을 요구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 관한 것이다.
우선,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대통령의 노력까지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기자회견이나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빼놓지 않고 위안부 해결을 일본 측에 촉구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여학생 고자질 외교’라고까지 비판했다. 그렇지만 위안부 문제를 과거사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이를 관계 정상화의 ‘입구’에 놓은 것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두 정상의 합의는 위안부 문제가 장기 과제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협의에 속도를 낸다고 해도 조기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아홉 차례의 국장급 회담과 수차례의 외교장관 협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그리 빨리 해결될 리가 없다. 더욱이 일본이 전향적으로 이 문제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 측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이번에 합의를 하면 앞으로는 더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것도 무리다.
한국은 세 가지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면서 지금처럼 다른 분야와 연계하는 방법, 이슈화는 계속하되 다른 분야는 협력하는 소위 ‘투 트랙’ 전략, 다른 분야의 협력을 우선하고 이 문제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이다. 정상회담까지 한 마당에 첫 번째 방법은 해외에서 비판받기 쉽고, 마지막 방법은 국내 여론상 선택이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투 트랙’ 뿐이다.
일부에서는 일본과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화가 난 국민이 할 소리지 국익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아니 선택해서는 안 되는 카드다. 올해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학계와 단체에서 개최한 여러 토론회나 세미나, 학술대회에서도 주류 의견은 일본에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격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축외교를 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움이 있겠지만 ‘투 트랙’ 전략을 쓰는 것을 결코 패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로 일본과 협력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투 트랙에도 전제가 있다. 첫째는 한국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국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대통령이 말하는 ‘성의 있는 조치’라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고, 정부안이 여론의 비판을 받으면 철회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우리의 요구를 분명히 제시하고 국내 의견도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이 문제를 한일이 이기고 지는 양자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로 접근해야 승산이 있다.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국제사회에 꾸준히 알림으로써 일본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게 현명하다. 국익을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선 이익’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