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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문겸]중소기업은 ‘을’인가?

입력 | 2015-11-04 03:00:00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시선 (上)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

《현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 개선의 효과는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인들은 개선된 규제의 양보다 기업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업규제 개선을 위해 정부가 위촉한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나쁜 규제의 현장을 찾아 고발하고 이를 개선할 정책제안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은 최근 공장 설비를 증설하려다 포기했다. 주문이 줄었거나 환율이 급등해 사려던 기계 값이 뛰어서가 아니라 ‘낡은 규제’ 때문이다. 공장을 증설하려다 보니 공장의 총 소비전력이 1000kW를 넘어 전기안전 관리자를 새로 고용해야 했던 것이다. 이 회사 대표는 “지방에서는 전기안전 관리자를 구하기도 어렵다”며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은 규제 때문에 생산을 늘리고 싶어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의 목표는 수익 창출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는 발전한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규제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옴부즈만’으로 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다 보면 규제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현장의 ‘대못’들이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낡고 불합리한 규제가 발목을 잡는데도 당당하게 호소하기 어려운 기업들의 처지가 규제 개선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각종 인허가를 받기 위해 관공서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들의 현실과 기업 민원이라면 ‘혹시 특혜가 아닌가’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정서 탓이다.

최근 만난 한 폐기물처리업체 대표는 “좋은 대우는 바라지도 않고 관공서에서 기업도 딱 주민처럼만 대우해주면 좋겠다”며 “기업도 지역주민처럼 세금을 내는 납세자인데 왜 기업은 ‘을(乙)’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실 중소기업은 소비자, 납품 대상인 대기업, 인허가 권한을 가진 정부 등 상대하는 모든 경제 주체에 대해 ‘을’의 입장이다. 하지만 소비자나 대기업은 몰라도 정부에 대해서도 중소기업들이 을의 처지에 놓여야 하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제 행정기관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미국은 일찌감치 기업민원 보호정책을 활성화했다. 미국 국세청은 2004년 민원을 제기한 기업에 보복행위를 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강제 면직 등 중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으며 중소기업에 부과하는 모든 고지서에 이러한 비보복 정책을 함께 보내고 있다. 호주 역시 규제피해 구제제도 중 하나로 국가기관의 잘못된 행정으로 손실을 입은 기업에 대해 금전 보상을 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민원을 넣은 기업에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기업민원 보호 서비스헌장’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이 헌장을 제정한 중앙부처는 14곳에 그친다. 그나마 상당수 기업은 기업민원 보호 서비스헌장 도입 사실조차 모르는 곳이 많다.

규제 개선의 효과를 높여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마을운동’ 같은 ‘기업권리 회복운동’이 시급하다. 국민적 의식 개혁을 통해 고도성장의 발판을 놓았던 새마을운동처럼 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통한 지속적인 기업 환경 개선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위한 도약대가 될 수 있다.

행정기관들의 관행적인 구두 발주, 만성적인 기업 민원 처리 지연, 고압적인 태도에 대해 기업들이 떳떳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뿌리 깊은 정부와 기업 간 ‘갑을(甲乙)관계’가 깨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중소기업 권리장전’을 제정하고 불합리한 행정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금전 보상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기업들이 일선 공무원이 무서워 침묵만 하는 현실이야말로 규제 개선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기업 환경을 좀먹는 고질병이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