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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의 스포츠 뒤집기]2위 수난사

입력 | 2015-11-04 03:00:00


장환수 기자

제갈공명은 야사(野史)인 삼국지연의가 탄생시킨 최고의 영웅이다. 교과서 논쟁이 한창인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나관중이 조작한 대표적인 역사 왜곡 사례다. 공명은 비와 바람을 뜻대로 움직였다. 적벽에선 조조의 백만 대군을 수장시켰다. 죽어선 산 사마중달을 쫓아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덕만 앞세워 공명이 내놓은 실용을 번번이 물리치는 유비를 최악의 주군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정사(正史)인 진수의 삼국지를 보면 적벽대전 때 공명의 활약상은 찾을 수 없다. 노회한 중달은 스스로 군사를 물렸다. 승부의 관점에서 공명은 2인자일 뿐이다. 삼분지계로 촉한(蜀漢)을 세우는 데는 기여했지만 천하통일의 위업은 위(魏)가 달성했다. 그럼에도 공명이 중국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이유는 그가 한실의 부흥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패장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촉이 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2인자나 아름다운 패자가 각광을 받기도 한다. 필 미컬슨은 타이거 우즈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지만 우즈 못지않은 명성과 부를 누렸다. 미컬슨은 1위는 고사하고 연말 기준으로 세계 랭킹 2위를 유지한 것조차 2007년과 2009년뿐이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LG 시절인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2승 4패로 물러났지만 당시 삼성 김응용 감독으로부터 ‘야신(野神)’이란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 주말 끝난 한국시리즈에선 삼성 류중일 감독이 큰 박수를 받았다. 삼성은 사상 최초의 통합 5연패 꿈이 좌절됐다. 도박 파문을 일으킨 핵심 투수 삼인방을 자체 출전 정지시킨 게 전력에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류 감독은 패배가 확정된 뒤에도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두산과 김태형 감독의 우승 축하 무대를 끝까지 지켰다. 사령탑에 처음 오른 2011년부터 정규 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그가 첫 패배의 아픔을 예쁘게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패배가 늘 아름답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승자를 기록한다. 스포츠에선 더 냉혹하다. 벌써부터 대구에선 안 좋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도박 파문을 예방하지 못한 형님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다든가, 아무리 투수 3명이 빠졌어도 1차전의 기적 같은 역전승을 포함하면 사실상 5패로 물러난 것은 문제가 있다든가 하는 뒷말이다.

그러고 보면 여태 2위에 머문 사령탑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은 ‘야신’의 칭호는 얻었지만 LG와의 재계약엔 실패했다. 2013년 두산 김진욱 감독은 삼성에 3승 1패로 앞서다가 3연패한 뒤 경질됐다. 만년 2위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새가슴’이란 오명을 안고 살았다. 삼성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2년 이전엔 감독들의 무덤이었다. 21세기 최강팀 삼성이 안팎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까. 올겨울 스토브리그의 관전 포인트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