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일결전론’을 주장하며 의병활동을 펼친 이설 선생(1850∼1906)이 ‘11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됐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선생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는 갑오변란을 일으키자 대일결전론을 주장했다.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까지 시해하자 대일결전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홍주의병에 참여했다.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본과 전쟁을 감행하자는 상소를 올려 또다시 옥고를 치렀으며 이듬해 옥고의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6·25영웅 호주 찰스 그린 중령 ▼
▼ 호국인물 석기찬 소위 ▼
1948년 여수·순천사건에서 반란군을 진압하다 순국한 석기찬 소위(1927∼1948)가 ‘11월의 호국인물’에 선정됐다. 석 소위는 1948년 10월 19일 육군 14연대 내 남로당 세력이 여수·순천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국군 제5연대 1대대 병력을 여수까지 이동시켜 남항부두에 무사히 상륙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석소위는 이 작전을 수행하다 10월 27일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고 한국 해군의 공식적인 첫 전사자였다. 석 소위의 희생정신으로 국군은 조기에 여수지역을 점령하고 반란군에 의한 양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