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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의 법과 사람]‘나라 망칠 법’ 손볼 때가 왔다

입력 | 2015-11-07 03:00:00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18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였다.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도 고백했다. 역대 최다의 직권상정과 최악의 몸싸움으로 얼룩졌다. 해머와 전기톱에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012년 5월 2일, 정의화 의장 권한대행은 “황우여 김진표 외 28인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법률안(국회선진화법)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다른 차원에서 지금 19대 국회도 역대 최악이다. 난투극을 벌이는 ‘동물 국회’는 막았지만 민생 법률을 제때 제정 못하는 ‘식물 국회’가 됐다. 소수 야당이 반대하면 어떤 법률도 통과되지 않는 불임(不妊) 국회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야당이 입법을 좌지우지해 ‘야당 결재법’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악의 국회가 만든 법률이 또 다른 최악의 국회를 만든 것은 헌정사의 비극이다.




머리 싸매는 헌재 재판관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협회가 선진화법의 조속한 심리를 헌법재판소에 촉구했다. 헌재에는 새누리당이 올해 1월 청구한 권한쟁의심판과 한 변호사단체가 작년 9월 청구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권한쟁의심판은 옛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 때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이, 헌법소원은 검찰 출신인 안창호 재판관이 각각 주심을 맡고 있다.

선진화법은 헌법이 규정한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된다. 입헌민주주의는 대통령과 다수당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다. 소수 야당이 입법을 보이콧하거나 관계없는 법률까지 끼워 넣어 연계투쟁을 일삼는 것은 입헌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법조항은 없다. 선진화법은 반(反)헌법적 속성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에서 이 법을 위헌으로 결정하는 것은 별개다. 헌재 재판관을 지낸 다수의 변호사들은 “국회 운영에 관한 사안이라 재판관들이 머리를 싸맬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선진화법 심리가 10개월 넘게 지지부진한 속사정이다. 헌재 재판관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외교통일위에 수년째 계류된 북한인권법의 심사기간 지정을 거부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통과한 법률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을 권한 침해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본권 침해가 전제돼야 하는 헌법소원은 위헌 가능성이 더욱 낮다.




문재인 선진화법 결단해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역사 국정 교과서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대 여당이 반대할 것이 분명한 법률을 만들 방법은 현재로선 전무하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더라도 선진화법 때문에 소수 여당이 반대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참에 문 대표가 선진화법의 수술을 결단해 국정화 저지와 함께 내년 총선의 승부수로 내걸면 어떨까.

야당이 9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여론조사에선 국정화 반대가 찬성보다 10% 이상 높은데도 야당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국회 내에서 합법투쟁을 하면 야당이 총선에서 꼭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 대표는 금지법 제정을 관철할 생각이 있다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선진화법 개정 협상부터 제의하라.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