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수석논설위원
머리 싸매는 헌재 재판관들
선진화법은 헌법이 규정한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된다. 입헌민주주의는 대통령과 다수당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다. 소수 야당이 입법을 보이콧하거나 관계없는 법률까지 끼워 넣어 연계투쟁을 일삼는 것은 입헌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법조항은 없다. 선진화법은 반(反)헌법적 속성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에서 이 법을 위헌으로 결정하는 것은 별개다. 헌재 재판관을 지낸 다수의 변호사들은 “국회 운영에 관한 사안이라 재판관들이 머리를 싸맬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선진화법 심리가 10개월 넘게 지지부진한 속사정이다. 헌재 재판관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한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이 외교통일위에 수년째 계류된 북한인권법의 심사기간 지정을 거부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여야 합의로 통과한 법률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을 권한 침해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기본권 침해가 전제돼야 하는 헌법소원은 위헌 가능성이 더욱 낮다.
문재인 선진화법 결단해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역사 국정 교과서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대 여당이 반대할 것이 분명한 법률을 만들 방법은 현재로선 전무하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더라도 선진화법 때문에 소수 여당이 반대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참에 문 대표가 선진화법의 수술을 결단해 국정화 저지와 함께 내년 총선의 승부수로 내걸면 어떨까.
야당이 9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여론조사에선 국정화 반대가 찬성보다 10% 이상 높은데도 야당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국회 내에서 합법투쟁을 하면 야당이 총선에서 꼭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 대표는 금지법 제정을 관철할 생각이 있다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선진화법 개정 협상부터 제의하라.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