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싫다’고 말했는데도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한 남성에게 법원이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상대방이 성관계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더라도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었다면 강간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서태환)는 강간상해,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상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피해자인 여성 B 씨는 연인관계였던 A 씨에게 두 차례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뚜렷한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이었다. B 씨는 A 씨와 얼굴도 마주하기 싫어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다. “하지 말라”는 의사도 분명하게 표시했고 그래도 달라붙는 A 씨를 밀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A 씨의 강압적인 태도에 결국 거부하기를 포기하고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A 씨의 행위에 대해 “강간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B 씨의 의사에 반할 정도의 힘을 행사해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B 씨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강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두 번째 성관계에 대해서도 “A 씨 폭력 때문에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가 계속됐다면 A 씨가 돌아왔을 때 방에 들어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10~20분 사이 B 씨가 심리적으로 안정돼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