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김남흥 돌하르방공원 원장
돌하르방공원 김남흥 원장은 미리 돌하르방의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원석을 보고 나서야 돌의 결을 따라 조각하기 시작한다.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돌하르방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준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5일 오후 찾아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돌하르방공원은 1만4800m²로 작지 않은 면적이지만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일 듯 말듯 주변 풍경에 스며 있었다.
김남흥 원장(49)은 2005년 돌하르방공원을 개장한 뒤 지금도 손에서 망치와 징을 놓지 않고 있다. 공원에서 돌 작업을 하기 시작한 시기가 2000년인 점을 감안하면 15년 동안 제주 돌, 현무암에 매달려 있다. 그의 돌하르방은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비슷한 형태가 아니라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분위기를 풍긴다. 포옹을 하듯 두 팔을 벌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땅에 닿기도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의 질감을 민낯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 구멍들은 화강암 같은 세밀한 묘사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투박한 구멍들에서 구수한 맛이 느껴지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만지면 거친 돌의 결이 전해져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 손을 잡는 것 같아요.”
○‘제주 DNA’를 찾아서
제주대 미술교육학과 출신인 김 원장은 전업 작가로 지내며 ‘제주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했다. 고즈넉한 풍경, 초가의 유연함을 그림에 담았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외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만 담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생겼다. 무작정 도서관으로 달려가 제주의 인문 관련 책을 뒤졌다. 그리고 현장으로 달려가 제주 사람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찾았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로 쌓은 밭담,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벽인 환해장성과 위험을 알린 봉수대, 마을 형성의 원천이었던 용천수 등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제주다운 제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라산이나 돌하르방 아닌가요. 돌하르방은 화산 섬인 제주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 평화라는 화두를 넣고 싶었습니다. 평화 속에는 사랑, 건강, 행복, 배려 등이 다 담겨 있으니까요.”
돌하르방 흙 모델링을 한 뒤 여러 자료를 비교하면서 실제 크기로 제작했다. 재현 과정을 거치면서 돌하르방을 만든 제주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됐다.
“미리 스케치를 하지 않고 돌을 보고난 뒤 어떻게 작업을 할지 구상합니다. 원석의 형태와 질감을 고려해 작업하기 때문에 머리, 팔, 몸통 등이 언뜻 보기에는 불균형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워요. 이것이 제주 사람들이 돌하르방을 조각한 핵심입니다. 돌하르방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작업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 위기 그리고 새로운 영감
김 원장은 돌하르방 재현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한 돌하르방을 만들었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공원을 찾아와 평화를 나눈다는 의미로 여러 캐릭터의 목조형물도 만들었다. 개원 당시 60점이던 작품은 250여 점으로 늘었다. 알음알음 공원이 알려지면서 입장객도 꽤 늘어 운영에 도움이 됐다. 여행사와 연계해 입장객을 더 많이 끌어들인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집에 있는 그림 1점, 그리고 돌하르방공원이었다. 공원을 걷던 어느 날 하늘에 내걸린 무지개를 가슴으로 품었다. 이어도를 본 듯한 느낌이 들면서 편안해졌다. 무지개는 새로운 희망의 열쇠였다. 무지개를 품은 하늘도 눈에 들어왔다. 그 후 무지개와 하늘, 빛으로 캔버스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불 탄 자리에 수도(修道)하는 마음으로 돌집을 지으면서 생각도 유연해졌다. 외부의 돌하르방 작품 의뢰를 받으면서 공원 입장료를 낮췄다. 숨고르기를 하면서 힘을 빼니 돌파구가 보였다.
“마음에 쌓였던 ‘화’는 바로 독(毒)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감동을 주는 힐링(치유)은 마음 정화이자 평화로움을 이루는 것”이라며 “시각적으로만 보이는 공원이 아니라 마음에 보이고, 마음을 위로하는 공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