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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돌하르방 통해 ‘제주 DNA’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입력 | 2015-11-09 03:00:00

<26> 김남흥 돌하르방공원 원장




돌하르방공원 김남흥 원장은 미리 돌하르방의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원석을 보고 나서야 돌의 결을 따라 조각하기 시작한다.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돌하르방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준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돌하르방 머리 위로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무사(武士)의 모습을 한 돌하르방은 험악한 인상을 지었다. 비둘기를 어깨에 얹은 돌하르방은 정 많은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가을이 지나든 말든 바윗덩어리를 감싼 송악덩굴은 곶자왈(용암 암괴 위에 형성된 자연림) 안에서 푸름을 뽐냈다.

5일 오후 찾아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돌하르방공원은 1만4800m²로 작지 않은 면적이지만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일 듯 말듯 주변 풍경에 스며 있었다.

김남흥 원장(49)은 2005년 돌하르방공원을 개장한 뒤 지금도 손에서 망치와 징을 놓지 않고 있다. 공원에서 돌 작업을 하기 시작한 시기가 2000년인 점을 감안하면 15년 동안 제주 돌, 현무암에 매달려 있다. 그의 돌하르방은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비슷한 형태가 아니라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분위기를 풍긴다. 포옹을 하듯 두 팔을 벌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땅에 닿기도 한다.

제주시 오등동 다음글로벌미디어센터의 인터넷을 하는 돌하르방, 바람처럼 왔다가 들꽃처럼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서귀포시 성산읍 김영갑갤러리의 카메라를 맨 돌하르방도 그의 작품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의 질감을 민낯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 구멍들은 화강암 같은 세밀한 묘사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투박한 구멍들에서 구수한 맛이 느껴지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만지면 거친 돌의 결이 전해져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 손을 잡는 것 같아요.”

○‘제주 DNA’를 찾아서

제주대 미술교육학과 출신인 김 원장은 전업 작가로 지내며 ‘제주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했다. 고즈넉한 풍경, 초가의 유연함을 그림에 담았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외형적인 제주의 아름다움만 담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생겼다. 무작정 도서관으로 달려가 제주의 인문 관련 책을 뒤졌다. 그리고 현장으로 달려가 제주 사람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찾았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로 쌓은 밭담,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벽인 환해장성과 위험을 알린 봉수대, 마을 형성의 원천이었던 용천수 등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제주다운 제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라산이나 돌하르방 아닌가요. 돌하르방은 화산 섬인 제주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 평화라는 화두를 넣고 싶었습니다. 평화 속에는 사랑, 건강, 행복, 배려 등이 다 담겨 있으니까요.”

공원 조성 첫 작업은 곳곳에 산재한 과거 돌하르방 48기(미완성 1기 포함)를 재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했다. 석공에게 맡겼는데 기술자처럼 깨고 자르는 바람에 옛 돌하르방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망치를 잡았다. 학교 후배도 불렀다.

돌하르방 흙 모델링을 한 뒤 여러 자료를 비교하면서 실제 크기로 제작했다. 재현 과정을 거치면서 돌하르방을 만든 제주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됐다.

“미리 스케치를 하지 않고 돌을 보고난 뒤 어떻게 작업을 할지 구상합니다. 원석의 형태와 질감을 고려해 작업하기 때문에 머리, 팔, 몸통 등이 언뜻 보기에는 불균형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워요. 이것이 제주 사람들이 돌하르방을 조각한 핵심입니다. 돌하르방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작업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 위기 그리고 새로운 영감

김 원장은 돌하르방 재현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한 돌하르방을 만들었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공원을 찾아와 평화를 나눈다는 의미로 여러 캐릭터의 목조형물도 만들었다. 개원 당시 60점이던 작품은 250여 점으로 늘었다. 알음알음 공원이 알려지면서 입장객도 꽤 늘어 운영에 도움이 됐다. 여행사와 연계해 입장객을 더 많이 끌어들인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3년 정도 더 고생하면 공원이 뿌리를 내리고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17)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계획이 무르익어갈 즈음 화마(火魔)가 덮쳤다. 2013년 3월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갤러리와 수장고, 자료실 등으로 쓰던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그가 틈틈이 그렸던 그림 700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원 조성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던 12권의 작업일지도 불에 타버렸다. 인생이 송두리째 지워지는 듯한 나락에 빠졌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집에 있는 그림 1점, 그리고 돌하르방공원이었다. 공원을 걷던 어느 날 하늘에 내걸린 무지개를 가슴으로 품었다. 이어도를 본 듯한 느낌이 들면서 편안해졌다. 무지개는 새로운 희망의 열쇠였다. 무지개를 품은 하늘도 눈에 들어왔다. 그 후 무지개와 하늘, 빛으로 캔버스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불 탄 자리에 수도(修道)하는 마음으로 돌집을 지으면서 생각도 유연해졌다. 외부의 돌하르방 작품 의뢰를 받으면서 공원 입장료를 낮췄다. 숨고르기를 하면서 힘을 빼니 돌파구가 보였다.

“마음에 쌓였던 ‘화’는 바로 독(毒)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감동을 주는 힐링(치유)은 마음 정화이자 평화로움을 이루는 것”이라며 “시각적으로만 보이는 공원이 아니라 마음에 보이고, 마음을 위로하는 공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