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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크리스마스 케이크가 25세?

입력 | 2015-11-09 03:00:00


합계출산율이 2.1명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에도 여전히 ‘둘도 많다’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출산율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2000년대 들어서야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보건복지부 제공

하임숙 경제부 차장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25세라며?”

얼마 전 대학 동문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성탄절이 다가와서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12월 24일까지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다가 25일이 되면 절정을 이룬 뒤 26일부터는 하나도 팔리지 않는다. 혼기 꽉 찬 여성을 비유하는 오래된 농담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30세가 훌쩍 넘은 여성의 결혼 적령기가 중국에서는 아직도 25세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혼기가 지난 여성을 부르는 말이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아니래. ‘피자헛’이라고 한다나?”

먹다 남은 피자 취급을 하기 때문이라거나 만날 사람이 없어 혼자서 피자를 시켜 먹기 때문이라는 식의 추측들이 오갔다. 알고 봤더니 ‘필사적인 남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비성커(必剩客)가 피자헛의 중국식 발음인 비성커(必성客)와 같아서 생긴 말이었다.

중국이 얼마 전 한 자녀 정책을 포기했고, 그 배경에 여성 인구 급감이 있다는 말끝에 나온 이야기들이다. 중국의 정책 변화에 ‘중국 너마저’라는 놀라움이 앞섰다. 세계 76억 인구의 18%인 13억6800만 명을 보유한 ‘인구 부자’가 중국 아닌가.

하지만 중국의 상황은 심각한 모양이다. 출생인구의 비중만 보면 중국은 세계의 12%‘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여기다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2억12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5%를 차지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비 불균형이다. 2020년이면 결혼 적령기 남성 3000만 명이 결혼 대상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남성들이 해외에서 신붓감을 조달할 경우 한국의 농촌 총각들이 동남아에서 신붓감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중국이 인구 부자 자리를 언제 내놓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이제 시작한 중국은 오히려 행복한 편이다. 이미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저출산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고, 노인 양육의 부담을 진 청년세대와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년세대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그리스 독일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을 찾아 청년층과 중장년층을 인터뷰해 ‘지구촌 세대갈등 몸살’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도 세대전쟁이 이미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세대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노년층의 국민연금 지급액을 늘리려다가 청년층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됐고, 일자리를 나누자는 노동개혁안이 합의된 뒤에도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살 집을 구하기 힘들어 월세를 전전하게 된 젊은층과 가진 자산이라곤 부동산뿐인 중장년층 사이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갈등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이 세대전쟁의 양상을 더 심각하게 만들어 놓을 개연성이 크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안됐지만, 당국이 두 자녀를 낳으라고 재촉해도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랜 기간 지속된 ‘한 자녀가 옳다’는 생각이 바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을 수 있는 평균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이어야 한 나라의 인구가 현상 유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에 이미 합계출산율이 2.06명으로 떨어졌지만 정부 당국은 1990년대까지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자’ 식의 구호를 외쳤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엔 형제자매가 5명인 우리 집이 ‘세련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부끄러움을 강요받곤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2000년대 들어 ‘엄마, 아빠 혼자는 싫어요’ 같은 캠페인을 벌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 결과 2005년에는 합계출산율이 1.076명까지 떨어졌고, 최근에 조금 개선된 게 1.205명이다. 더구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두 자녀 이상을 낳는 일은 큰 희생과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됐다.

청년층이 늘고 일할 사람이 많아져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 세대갈등은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다. 내후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 예정인 한국은 시간이 별로 없다. 시스템과 국민 인식을 동시에 고쳐야 하는 일이어서 더 걱정이다.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