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끝난 요즘이 1년중 가장 슬퍼요”
저자는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 등을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68)이다. 지난주 서울 관악구의 연구소에서 가진 정 이사장과의 만남에서 ‘야구 바보’를 자처한 그의 면모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2시간 가까이 야구 얘기만 하는 그는 어느새 뽀얀 흙먼지를 마셔가며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던 50여 년 전 소년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때론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신바람을 내며 시공을 넘나들었다.
열성 야구팬으로 소문난 정 이사장은 LA 다저스의 전설 토미 라소다의 명언으로 말문을 열었다.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라는데 요즘 그렇다.” 인터뷰 며칠 전 국내 프로야구는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렸다. 그는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 OB(현 두산)를 좋아하다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고향이 공주라 당시 대전이 홈이던 OB가 연고팀이었고, 서울대 재학 시절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때 동창회장이 OB의 고 박두병 회장인 것도 영향을 줬다. 두산 야구는 끈질기고 팀워크가 강하다. 어린 선수들도 잘 키우는 게 매력이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이 글러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형들이 사람이 모자란다며 함께 야구 하자고 해 끼워 준 게 시작이다. 경기중에 입학해 ‘진짜 선수’가 된 그는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주전이 아니라 운동장에 물 뿌리고 줄 긋는 주전자(후보) 선수였다. 어느 날 감독님에게 ‘난 언제나 뛸 수 있느냐’고 했더니 ‘운찬이는 공부해도 된다던데’라고 하시더라. 그날로 야구부를 나왔지만 학창 시절 내내 야구를 하고, 보는 데 빠졌다.”
미국 유학 시절 야구 때문에 박사학위 취득이 1년 늦춰졌다거나, 컬럼비아대 교수 면접을 볼 때 해박한 야구지식 덕분에 취업이 수월했다는 등의 일화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2012년에는 버킷리스트였던 메이저리그 시구의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그는 “초중학교 7년 동안 도시락을 못 싸갈 만큼 가세가 기울어 점심시간이면 1시간씩 학교 주변을 걸었다. 야구를 통해 많은 어려움을 잊고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야구 열심히 한 덕분에 늘 건강하다. 교육에서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는데 ‘체덕지’가 돼야 한다. 학교 체육은 올바른 인성과 지식을 키우는 바탕이다”고 덧붙였다.
정 이사장은 한국 야구의 현실을 향해서도 돌직구를 날렸다. “국내 프로야구는 무늬만 프로다. 연간 150억∼200억 원씩 지원해주는 모기업 의존도가 너무 높다. 지방자치단체는 진정한 야구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구장 임대료를 깎든지 받지 말아야 한다. 야구팀이 시민에게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가.” 야구장에서도 동반성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그는 “드래프트 지명 방법을 개선해 하위 팀이 더 많은 혜택을 받아 전력 평준화를 꾀해야 한다. 특정 선수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몸값은 낮추고 최저 연봉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야구팬으로 꼭 한마디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야 한다. 핸드볼 스코어는 재미를 떨어뜨린다. 야구장에 같이 다녔던 아내가 야구시간이 길어졌다며 안 가더라. 3시간 넘으면 지루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