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우승’ 조성진 파리 현지 인터뷰]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선 ‘21세 쇼팽’ 쇼팽콩쿠르 우승 축하 독주 연주를 전날 마치고 8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조성진 씨.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연주장에서 보여준 스타 연주자의 카리스마 대신 순수하고 맑은 얼굴의 앳된 소년의 모습이 느껴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7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인근 클래식 콘서트장 ‘살 갸보’(Salle Gaveau)에서는 세계적 권위의 폴란드 국제쇼팽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의 연주가 있었다. 2시간 공연에 3곡의 앙코르까지 더 하자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이 되었지만 관객들은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로비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음악적 자존심이 높고 평가에 냉정하기로 유명한 파리 청중들도 조성진이 로비에 나타나자 일제히 스마트 폰을 치켜들고 몰려들었다. 여성 팬들 중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원정 온 팬들까지 있어 아이돌 ‘한류 스타’는 저리가라는 분위기였다.
이튿날인 8일 오후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가 보이는 카페 마를리(Cafe Marly)에서 그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 좌석의 프랑스 손님들이 알아보고 “피아니스트 아니냐?” “어제 공연을 봤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쑥쓰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웨이터에게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며칠 전 영국 버밍엄, 런던 공연에서도 많은 팬들이 로비에서 기다려서 많이 놀랐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클래식 붐’이 일어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콩쿠르에 출전한 것도 더 많은 연주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 유명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란 언젠가는 사그러드는 것이다.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첫마디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소개한 친구들이 ‘애늙은이’라고 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얼굴은 미소년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잘 믿기지 않았고 다음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같은 역대 우승자들 명성에 내가 누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처럼 오랫동안 연주하고 기억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는 지난달 20일 쇼팽 콩쿠르 이후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폴란드, 영국, 파리, 네덜란드, 상하이, 베이징, 도쿄, 서울 등 전 세계에서 20회가 넘는 독주회와 협연이 예정돼 있으며 내년에만 총 60회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2시간 밖에 못자는 날이 많다”는 그의 얼굴을 보니 피곤함이 스쳤다. 기분도 풀어줄 겸 옛날 이야기를 물었다.
-피아노를 배우게 된 계기는.
“10살 때 동네학원에서 시작해 11살에 처음으로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았으니 좀 늦은 편이었다. 그해(2005년) 쇼팽콩쿠르를 처음 보았는데 라파우 블레하츠,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아, 나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친은 건설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모친도 전업 주부로 알고 있다. ‘부모가 최고의 스펙’(웃음)이라는 요즘 시대에 부모가 음악인이 아니었는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놀라고 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에 입학 원서를 보낼 때에도 누구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유학을 결심한 후 하루 4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해 석달 만에 불어능력시험(DELF)에서 대학입학이 가능한 자격증(B1)을 땄을 때 너무 기뻤다”고 했다.
한편 기자는 7일 밤 파리 공연장에서 그의 모친을 만날 수 있었다. 팬들에 둘러싸인 아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행여 자신에게 이목이 쏠릴까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가 다가가 “소감을 말해 달라” 하자 “죄송합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은 다들 미국이나 독일로 유학을 가던데.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하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파리에 놀러왔다가 문화적으로 축복받은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유학 온 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한번 가면 3~4시간씩 있곤 했다. 처음에는 고흐, 모네같은 인상파 그림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바로크, 르네상스 미술도 좋아한다. 유럽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특히 인상 깊었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공연도 1년에 80개 씩 보며 즐겼다.”
조성진은 쇼팽콩쿠르를 앞둔 올해 새해 첫날 파리 페르라쉐즈 묘지에 있는 쇼팽 무덤을 찾았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쇼팽의 생가,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살롱 등 파리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을 더듬으며 악보 너머의 쇼팽을 직접 느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선에서 유일하게 ‘1점’을 준 심사위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결과가 안 좋았다면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다(웃음). 모두가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사결과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콩쿠르 우승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더 이상 쇼팽콩쿠르는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즐겁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웃음). 이제 쇼팽이 아닌 다른 작품도 칠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신난다. 유명 연주자의 콘서트에 가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이 안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싶다. ”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는 뭘 하나.
“미술과 문학, 요리가 취미이다. 카뮈 ‘이방인’은 원서로 읽었다. 파리 빵집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 것도 좋아한다.”
-당신에게 피아노란.
“성격상 수줍음이 많은데 무대에 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연주보다 더 떨린다. 무대에 서는 일은 내게 ‘휴가’나 다름없다. 연주회 전에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그게 내 진짜 모습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과정이 너무 힘겨워 무대에서 서는 게 오히려 휴식이라는 그의 말에 그가 이룬 성취 뒤에 흘린 땀과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슴이 짠해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