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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연주가 내겐 휴식… 이젠 콩쿠르 안나가도 돼 신나요”

입력 | 2015-11-10 03:00:00

[‘쇼팽 우승’ 조성진 파리 현지 인터뷰]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선 ‘21세 쇼팽’ 쇼팽콩쿠르 우승 축하 독주 연주를 전날 마치고 8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조성진 씨.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연주장에서 보여준 스타 연주자의 카리스마 대신 순수하고 맑은 얼굴의 앳된 소년의 모습이 느껴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하얗고 기다란 손, 흩날리는 머리카락, 끝없는 고뇌와 순수를 담은 표정….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의 젊은 쇼팽이 살아온 듯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쇼팽의 녹턴과 스케르초, 24개의 전주곡을 특유의 투명한 음색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마무리하자 3층 객석까지 가득채운 파리의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브라보!”

7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인근 클래식 콘서트장 ‘살 갸보’(Salle Gaveau)에서는 세계적 권위의 폴란드 국제쇼팽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의 연주가 있었다. 2시간 공연에 3곡의 앙코르까지 더 하자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이 되었지만 관객들은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로비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음악적 자존심이 높고 평가에 냉정하기로 유명한 파리 청중들도 조성진이 로비에 나타나자 일제히 스마트 폰을 치켜들고 몰려들었다. 여성 팬들 중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원정 온 팬들까지 있어 아이돌 ‘한류 스타’는 저리가라는 분위기였다.

집에 가려고 공연장 계단을 내려오던 조 씨는 많은 팬들에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셔츠와 코트의 평상복 차림의 그는 공연 때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던 스타 연주자가 아니라 아직 소년티가 남아있는 앳된 모습의 대학생처럼 보였다.

이튿날인 8일 오후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가 보이는 카페 마를리(Cafe Marly)에서 그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 좌석의 프랑스 손님들이 알아보고 “피아니스트 아니냐?” “어제 공연을 봤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쑥쓰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웨이터에게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가히 ‘조성진 신드롬’이다. 인기를 실감하나.


“며칠 전 영국 버밍엄, 런던 공연에서도 많은 팬들이 로비에서 기다려서 많이 놀랐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클래식 붐’이 일어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콩쿠르에 출전한 것도 더 많은 연주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 유명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란 언젠가는 사그러드는 것이다.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첫마디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소개한 친구들이 ‘애늙은이’라고 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얼굴은 미소년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쇼팽콩쿠르 우승할 때 소감이 어땠나.

“처음엔 잘 믿기지 않았고 다음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같은 역대 우승자들 명성에 내가 누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처럼 오랫동안 연주하고 기억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는 지난달 20일 쇼팽 콩쿠르 이후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폴란드, 영국, 파리, 네덜란드, 상하이, 베이징, 도쿄, 서울 등 전 세계에서 20회가 넘는 독주회와 협연이 예정돼 있으며 내년에만 총 60회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2시간 밖에 못자는 날이 많다”는 그의 얼굴을 보니 피곤함이 스쳤다. 기분도 풀어줄 겸 옛날 이야기를 물었다.

-피아노를 배우게 된 계기는.


“10살 때 동네학원에서 시작해 11살에 처음으로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았으니 좀 늦은 편이었다. 그해(2005년) 쇼팽콩쿠르를 처음 보았는데 라파우 블레하츠,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아, 나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친은 건설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모친도 전업 주부로 알고 있다. ‘부모가 최고의 스펙’(웃음)이라는 요즘 시대에 부모가 음악인이 아니었는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놀라고 있다.

“부모님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묵묵히 밀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어릴 적부터 콩쿠르에 많이 나갔는데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셨을 정도였다. 국내든 해외 콩쿠르든 선생님이 추천해주시면 스스로 결정해 나갔다. 파리 유학생활 동안 엄마가 요리와 집안일을 도와주신 것이 가장 고맙다. 나 때문에 기러기 생활을 하시는 아빠랑은 화상통화를 자주한다. 아빠도 어릴 적부터 늘 내게 ‘연습 좀 그만하고 함께 나가 놀자’고 하셨을 정도였다(웃음). 유학을 결심한 것도 혼자 내린 결정이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에 입학 원서를 보낼 때에도 누구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유학을 결심한 후 하루 4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해 석달 만에 불어능력시험(DELF)에서 대학입학이 가능한 자격증(B1)을 땄을 때 너무 기뻤다”고 했다.

한편 기자는 7일 밤 파리 공연장에서 그의 모친을 만날 수 있었다. 팬들에 둘러싸인 아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행여 자신에게 이목이 쏠릴까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가 다가가 “소감을 말해 달라” 하자 “죄송합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은 다들 미국이나 독일로 유학을 가던데.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하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파리에 놀러왔다가 문화적으로 축복받은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유학 온 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한번 가면 3~4시간씩 있곤 했다. 처음에는 고흐, 모네같은 인상파 그림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바로크, 르네상스 미술도 좋아한다. 유럽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특히 인상 깊었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공연도 1년에 80개 씩 보며 즐겼다.”

조성진은 쇼팽콩쿠르를 앞둔 올해 새해 첫날 파리 페르라쉐즈 묘지에 있는 쇼팽 무덤을 찾았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쇼팽의 생가,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살롱 등 파리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을 더듬으며 악보 너머의 쇼팽을 직접 느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선에서 유일하게 ‘1점’을 준 심사위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결과가 안 좋았다면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다(웃음). 모두가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사결과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콩쿠르 우승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더 이상 쇼팽콩쿠르는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즐겁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웃음). 이제 쇼팽이 아닌 다른 작품도 칠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신난다. 유명 연주자의 콘서트에 가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이 안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싶다. ”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는 뭘 하나.

“미술과 문학, 요리가 취미이다. 카뮈 ‘이방인’은 원서로 읽었다. 파리 빵집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 것도 좋아한다.”

-당신에게 피아노란.

“성격상 수줍음이 많은데 무대에 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연주보다 더 떨린다. 무대에 서는 일은 내게 ‘휴가’나 다름없다. 연주회 전에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그게 내 진짜 모습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과정이 너무 힘겨워 무대에서 서는 게 오히려 휴식이라는 그의 말에 그가 이룬 성취 뒤에 흘린 땀과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슴이 짠해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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