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게 있다. ‘저 사람은 왜 이 주제를 잘못 파악하지?’ ‘내가 한 말이나 내가 쓴 글은 그 뜻이 아닌데, 왜 저렇게 받아들이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나는 그런 것들에 ‘오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거나 숨은 의도를 읽는 일을 못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주제를 파악 못하기로는 이름깨나 떨치던 인물이었다. 특히 그와 관련해서 국어시험을 두려워했는데 거기엔 나 나름대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시험 지문들은 ‘이것이 주제다’ 하고 정답으로 정해진 것 말고도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그 자체로 늘 변하고 만들어지고 없어지는데(‘버스카드충전’을 버카충으로 줄여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하물며 그 언어를 가지고 해석을 하는 일은 얼마나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밝히곤 했다. (조금 있어 보이는) 대외용 멘트였다. 그리고 (입 밖에 내면 너무 없어 보여서 비밀로 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냥 정말로 내가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데, 음,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나의 이런 주제파악 능력에 대해서 누군가 해준 적확한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안경 얼마냐”는 질문을 받으면, “3만 원, 5만 원” 하는 식으로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시력과 도수로 대답을 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 “발굽소리를 들으면 말을 떠올려라, 얼룩말 말고”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건 (내가 당연히 얼룩말이나 물소를 떠올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수가 찾아내는 주제와 대체로 동떨어져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물론 이 얼룩말 이야기는 ‘오컴의 면도날’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단순한 것이 참이다’라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적용했을 때 이것은 역시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이나 작품의 메시지를 파악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정답을 따르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신자, 해석하는 이가 가진 것들을 바탕으로 읽어낸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독’은 없다. 어떤 이가 하는 해석은 그가 가진 이해와 해석의 틀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으므로 누군가가 하는 해석은 곧 그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저마다가 가진 세계에 옳고 그름은 없으므로, 당연히 그르게(誤) 읽었다고 하는 오독(誤讀)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같은 것을 보는데 누군가는 불쾌해하고 누군가는 감동을 받는다. 같은 것을 듣는데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듣지 못한다. 지금도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에 ‘해리포터’를 두고, 그는 “복잡해서 싫다”고 하고 “나는 그 복잡함과 불명확함이 좋다”는 이야기를 나눈 참이다. 경험 속에서 복잡함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인지한 사람과, 경험 속에서 사실 명확한 건 없는 것이라고 인지한 사람은 같은 작품을 보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누구의 의견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렌즈가 다른 것뿐. 작가가, 감독이 나와서 작품을 만든 자신의 의도는 이거고 사람들이 이렇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말들을 이따금씩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무용한 시도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볼 수 있는 만큼, 혹은 보고 싶은 만큼 본다. 보고 듣고 읽는 사람 수만큼의 해석이 있고 주제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주제파악에 늘 어려움을 겪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못하고 나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을 어쩜 그리도 비난했던가.
가끔, 설령 그것이 정말 나를 불쾌하게 하는 의견일지라도 지나치게 새롭고 독특할 경우, 동의와 반대의 차원을 넘어 그 사람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것들을 보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기에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순전한 호기심이 일어나면서 그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든다. 보고 듣는 것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곧 우리 자신의 환경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바탕이 되며, 이 바탕은 저마다 다 다르다. 이 구체적인 개인들의 저마다 다 다른 삶을 떠올리다 보면, 그래서 그들이 찾아내는 무언가의 주제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내가 동의하기 힘들었던 의견과 반응들이 이해되는 순간이 있다. 반대자들을 좋아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다. 이 사실은 나를 조금 안심하게도, 자유롭게도 한다.
임유진 엑스플렉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