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씨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출간 두 달 만인 이달 초 5000부를 찍었다. 2012년 나온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7000부가 나가면서 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이 뜨거운 관심은 황 씨의 시집뿐일까. 문학의 죽음이 운위되는 21세기에도 시집들의 수요는 놀랍게도 꾸준하다.
지난해 이문재 시인이 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지금까지 1만 부, 이제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는 7000부가 나갔다. 이들처럼 중견 시인, 시단에 안착한 시인만 수요가 있는 게 아니다. 올 초 나온 송승언 씨의 ‘철과 오크’는 출간 한 달도 안 돼서, 9월 출간된 임승유 씨의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는 두 달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 두 시인에게 모두 첫 시집이다. 시집을 내는 주요 문학출판사에 따르면 신인들의 첫 시집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집들이 6개월에서 1년 내에 초판을 소진하고 증쇄에 들어간다. 소설 초판이 소화되기 힘들다는 시대에 말이다.
때마침 TV 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서 소개한 시집들이 대박을 치면서 시집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뜨거워진 분위기다. 3년 전 출간된 박준 씨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9월 방송에서 소개된 이후 3만5000부가 나갔고 지난주 소개된 심보선 씨의 ‘슬픔이 없는 15초’는 일주일 만에 7000부를 찍었다. 그렇다고 ‘방송 탔다’기엔 이 시집들의 구력은 본래 만만치 않았다. 박준 씨의 시집은 방송 전까지 1만5000부, 7년 전 나온 심보선 씨의 시집은 해마다 7000∼8000부씩 나갔다. 적잖은 양이 지속적으로 판매됐다는 얘기다.
황인찬 씨는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에서 ‘너는 멀리 나는 새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는다 (…) 너는 저기 굴러다니는 작은 사물들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물론 시인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멀리 나는 새들의 이름을 외우고, 작은 것들을 아름다운 것이라 부르는 사람들, 시를 쓰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어 하며 시를 향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여전히 한국에 많다. ‘시집 불패’ 신화를 끌어가는 이들이기도 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