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번엔 읍내 단란주점에서 맥주를 마시고, 야간 음주 오토바이 운전을 감행, 그대로 전봇대에 부딪힌 경우라고 했다.
거, 그러니까 큰아버지께서 그 밤에… 선글라스를 쓴 채 오토바이를 모시다가….
6인실을 지정받고 입원한 지 사흘쯤 지났을 때였던가,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로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내려갔다.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하는데, 이거야 원 스타일이 안 살아서…. 병실 내 다른 환자 들으라는 듯 계속 그 말씀을 큰소리로 반복한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함께 찾아간 커피전문점이었다.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한 아버지는 카운터 앞에 서서 주문을 하는 그와 유리 진열장에 놓인 베이글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다방커피’에 익숙한 아버지를 생각해 바닐라라테 한 잔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그가 그렇게 주문을 마쳤을 때, 그의 아버지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가씨도 한 잔 마셔.”
그의 아버지는 카운터에 서 있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아버지, 제발 그러지 좀 마세요.”
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를 붙들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 아버지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젊을 땐 얼마나 착실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다 나이 먹는 게 허해서… 그래서 그런 게 아니겠니….
“아버지, 이런 데서 이러시면 잡혀가요. 여긴 그런 곳이라고요.”
그의 말에 아버지는 시선을 피하면서 흠흠, 헛기침만 몇 번 했을 뿐이었다. 아버지 허한 거 아는데요… 그러면 어머니는요…. 그는 그런 말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 그의 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있는 진동 벨을, 부르르 떨리는 진동 벨을, 왼손에 쥔 채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담당 의사는 계속 검진 날짜를 체크하면서 말을 끌었고, 그의 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그러나 애써 그것을 감추려 노력하면서 진동 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는 결국 진동 벨을 척, 귓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라는 아버지의 입 모양이 그대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거기에 서 있었다. 입동 전후였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