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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국정과 함께 검정 교과서 2, 3개 열어주라

입력 | 2015-11-11 03:00:00

천신만고 국정화 하더라도, 새로운 편향 논란 생기고 대안교과서 사용 막지 못한다
국정으로 통일한 역사교과서는 국민교육헌장 외우던 방식
표준의 국정교과서 만들되, 검정 강화한 민간 교과서 허용해 다양성의 숨통 개방해야




황호택 논설주간

여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하는 모습이다. 국정화가 여야의 텃밭인 영호남에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에는 사상의 자유나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제약하는 정부 개입에 거부감을 갖는 지식층이 많다.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구를 가진 여당 후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국정화를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총선에 승리한 뒤 그 여세를 몰아 국정화로 갔어야 한다는 견해가 여권 안에서도 나온다.

정치와 국정운영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을지 모른다. 역사전쟁을 통해 현행 역사 교과서의 문제를 알리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면 선거에 불리하지 않으리라는 구상을 했을 수도 있다.

국정화라는 문화적 이슈가 보수 결집 효과를 가져오고 경기 침체나 청년실업 같은 악재를 뒤덮는 효과를 내 여당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선거에서도 낙태, 동성 결혼 같은 문화적 이슈가 경제사회적 이슈를 밀어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만을 놓고 보면 반대가 우세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오히려 뒷걸음질친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은 젊은층은 정작 투표율이 낮다. 6개월 남은 총선까지 어떤 변수가 터져 나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치여론조사 전공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론조사를 심층분석해 보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진보 쪽의 결집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7, 8년 동안의 선거 판세는 진보 25%, 중도 35%, 보수 40%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나 국정화 논란 이후 추세를 보면 40 대 20 대 40으로 평평한 운동장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논의 부족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국정화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불가능한 사안이고 이제 와서 유턴을 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박근혜 정부로선 우리 사회가 공감할 만한 수준의 필진을 초빙해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 현장에 안착시킴으로써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성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많은 교수들이 집필을 거부하거나 참여를 유보해 시간은 촉박한데 좋은 필진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가 필진 응모자들의 명단도 공개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과연 좋은 교과서가 나올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천신만고 끝에 국정 교과서가 나오더라도 역(逆)편향 논란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지식층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 중에선 ‘역사 해석의 다양성 훼손’이 가장 많다. 정부로서도 아픈 대목이었는지 황교안 국무총리는 현재의 교과서 99.9%가 다양성을 상실한 편향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설사 그렇더라도 검정을 강화해 다양성을 보완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다양성을 틀어막는 국정화로 가는 것은 민주적 방식이 아니다. 한 원로교수는 역사 해석을 정부가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야말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던 방식의 역사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경직된 자세를 풀고 유연성을 발휘하면 지금이라도 다양성의 숨통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본다. 현재 8종으로 난립한 역사 교과서에서 민중좌파색이 짙은 것들을 걸러내고 2, 3종의 민간출판사 교과서가 국정과 열린 경쟁을 하는 방안이다. 국정화 이후 13개 시도의 좌파 교육감들이 학교에서 대안 교과서를 사용하더라도 정부가 실제로 말릴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국정 교과서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꼼꼼히 받은 민간 교과서 2, 3종을 허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나는 교학사를 제외한 7종 교과서 중 비교적 괜찮다는 지학사 교과서를 구해서 근현대사 부분을 읽어봤지만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부가 검정을 강화해 잘 정리한 지학사나 리베르스쿨 같은 교과서를 국정과 경쟁시킨다면 역사 해석의 독재라는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정과 검정이 경쟁하면 국정 교과서가 제2의 교학사 교과서 꼴이 날 것이라고 정부는 우려하는 듯하다. 그러나 전교조나 좌파 시민단체들이 이번에 또 자유로운 교과서 선택을 방해한다면 국정화의 명분을 강화해줄 뿐이다. 국론이 양분돼 소모적인 정쟁과 논란이 계속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국사 교과서 문제를 극단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될 일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