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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기용]‘富의 원천’ 개인정보

입력 | 2015-11-12 03:00:00


김기용 산업부 기자

신용카드 회사의 카드 부정사용 방지 시스템 개발 및 설치 업무를 담당하는 신용정보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 박모 씨는 지난해 초 KB국민카드, NH농협은행, 롯데카드에서 개인정보 1억568만 건을 빼냈다. 박 씨는 이 정보를 대출광고업자에게 팔아넘겼다가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징역 3년형은 박 씨에게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사회’, 모든 사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 금융과 ICT가 결합한 ‘핀테크 시대’, ICT 융합 기술이 산업 변화를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등 관점에 따라 우리가 사는 현재를 정의하는 말은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용어가 어찌됐든 개인정보가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스라는 사실은 공통점이다. 거주지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개인 위치정보, 금융정보, 소비정보, 의료정보 등이 부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부의 원천을 훔친 죄’, 복역 중인 박 씨의 죄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가 받은 형량은 국민들의 법 감정과 괴리가 크다. 법이 시대의 변화를 뒤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 절도죄도 6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처벌 수위는 낮으면서 처벌 범위는 지나치게 넓은 것이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개인정보를 모아 분석하는 빅데이터 산업 진출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박 씨 사례가 국내 개인정보 보호 정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면 정부는 수습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영역을 계속 확대해 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더 확대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개인정보 보호 분야 전문가조차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제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까지 올라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빅데이터 산업은 꿈도 못 꾼다. 빅데이터의 핵심은 개인정보를 많이 모아 자유로운 분석을 허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에 동의를 받은 목적 외 분석은 힘들다. 이미 모아 놓은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빅데이터 산업이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 영역이 지나치게 넓은 것도 문제지만 박 씨의 경우처럼 적발됐을 때 처벌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다.

다행히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빅데이터의 이용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면서 “교통사고 피해가 크다고 해서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드시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의 핵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단, ‘부의 원천’을 훔쳐가려 한 도둑이라면 다시는 사회에 발붙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 전제돼야 한다.

김기용 산업부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