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61)은 14개월 동안 8명의 골키퍼를 대표팀에 불렀다. 대부분의 국가 대표팀 감독들은 ‘안정성’이 중요한 골키퍼를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골키퍼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경쟁 체제를 가동했다. 올해 1월 열린 아시안컵까지만해도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 주전 자리를 꿰차는 듯했다. 그러나 월드컵 2차 예선부터 김승규(울산·3경기)와 권순태(전북·1경기)가 중용되면서 골키퍼 자리를 놓고 3파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대표팀이 약체 팀을 주로 상대해 골키퍼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다.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내는 ‘슈퍼 세이브(결정적 실점 위기를 막아내는 것)’를 할 기회가 없어 골키퍼들의 능력을 비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표팀은 2차 예선에서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상대에게 좀처럼 슈팅 기회를 주지 않았다. 9월 라오스와의 2차 예선에서 대표팀 골문을 지킨 권순태가 “이렇게 공이 오지 않은 경기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라오스의 슈팅은 전후반을 통틀어 2개(한국 26개)에 불과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이운재, 김병지와 함께 대표팀 골문을 지켰던 최은성 전북 코치(44)는 “골키퍼의 덕목은 단순히 슈퍼 세이브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슈팅 방어 외에도 경기 운영 능력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코치는 “골키퍼는 수비라인의 가장 뒤에서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따라서 수비수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수비 라인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