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뤽스만은 1956년 프랑스공산당(PCF)의 당원이었으나 소련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침공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이후 좌파그룹 ‘악시옹’에 들어가 마오주의자로 68혁명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읽고 지적 전환을 감행한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함께 반(反)전체주의적 철학인 신(新)철학의 양대 기수가 돼 스탈린 공산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고 비판했다. 그에게는 좌파 지식인 사이에 만연한, 자기 패거리에서 낙인찍히는 데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애초 없었다.
▷글뤽스만은 반스탈린주의를 거쳐 반공산주의자가 됐지만 우파로 돌아섰다기보다는 좌우를 넘어섰다. 그는 1979년 좌파의 사르트르, 우파의 레몽 아롱이 만나는 엘리제궁 모임을 주선해 함께 베트남 보트피플을 위한 대의(大義)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새로운 니힐리즘으로 규정하고 “세상에 신이 없다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도스토옙스키적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는 이슬람에 대해 할 말을 하는 몇 안 되는 서구 지식인이 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