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하늘로 번지는 ‘남중국해 갈등’ 우발적 충돌 위기 고조
美는 전폭기로, 中은 미사일로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중국 양국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전략무기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기습할 수 있는 사거리 4000km의 탄도미사일인 둥펑-26(위 사진)을 올해 9월 열병식 때 공개하고,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핵탄두 미사일 쥐랑-2(아래 사진) 시험발사와 잠수함 항행 훈련도 끝냈다. 동아일보DB
이처럼 양대 강국의 힘겨루기는 탐색전을 지나 본게임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게임의 서막이 남중국해다. 중국에 대한 근접 포위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과 포위망을 바다 멀리 밀어내고 태평양에 진출해 미국 본토를 겨냥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이곳에서 격돌하기 때문이다.
근해에서 미국을 몰아내려는 중국
과거 중국군의 국방 전략은 연안 방어였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 영토를 확장하면서 미국의 해·공군력을 위협으로 보기 시작했다. 198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오른팔이었던 류화칭(劉華淸) 당시 해군 제독은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의 안보전략을 다시 짜는 이른바 ‘열도선’ 개념을 내놓았다. 원양 방어로의 전환이다.
먼저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남중국해를 잇는 가상의 선(제1 열도선)을 그은 뒤 중국에서 봐서 그 안쪽의 제해권을 2010년까지 장악한다는 것이다. 제1 열도선 안에는 남중국해와 대만이 포함된다. 이어 조금 더 먼 바다인 오가사와라제도∼사이판∼괌∼파푸아뉴기니를 잇는 가상선(제2 열도선) 내부의 제해권을 2020년까지 장악한 뒤 2040년에는 미 해군의 태평양·인도양 지배 체제를 저지한다는 장기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제1 열도선 안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A2(Anti-Access·접근 저지) 전략을, 제2 열도선 안에서는 미국 함대의 자유로운 작전을 방해하는 AD(Area Denial·영역 거부) 전략을 구사한다는 게 당면 목표다.
태평양으로 빠져나가 미 본토 위협
중국의 제1 열도선 전략은 단순히 중국 방어의 성격만 있는 게 아니다. 하이난 섬의 잠수함이 남중국해를 자유롭게 빠져나가게 되면 미국 본토도 위협할 수 있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하나로 꼽히는 잠수함은 핵 억지력과 직결된다. 육상에 설치된 핵 기지는 언제든 선제공격이 가능하지만,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싣고 태평양 수면 밑을 몇 개월씩 돌아다니는 원자력 잠수함은 위치 추적이 쉽지 않다.
남중국해 첫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친 094형 잠수함에는 3∼6개의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는 중국이 올해 말 094형 잠수함에 쥐랑-2를 장착한 ‘미사일 장착 순항’을 해낼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 시기도 당겨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쥐랑-2를 장착한 094형 잠수함은 올해 말부터 실전 배치될 수 있다”며 “이는 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을 보유한 중국이 어떤 공격을 당해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전력 우위는 시간문제
미국의 노심초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우위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 때 처음 선보인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둥펑-21D’와 ‘둥펑-26’ 등 첨단 무기 때문이다.
사거리 900∼1500km로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둥펑-21D는 2001년 중국 정부가 처음 배치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둥펑-21D의 파생종인 둥펑-26은 사거리 3000∼4000km로 미국의 태평양 전략기지인 괌도 타격할 수 있다. 특히 이 미사일은 이동식발사차량(TEL)에 탑재된다. 야간에 이동한 뒤 발사하면 천하무적의 미국 항공모함 전단도 불시에 기습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들 미사일의 등장으로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하던 미 해군 전력은 위험에 노출됐다. 제1 열도선 안의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는 물론이고 제2 열도선의 괌 기지도 안심할 수 없다.
중국으로서는 절치부심의 성과다. 1996년 대만 총통 선거 때 독립노선을 견제한다며 대만 근해에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때 미국이 보낸 항공모함 2척 때문에 물러서야 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국에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후 20년이 지나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정밀 유도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다.
미 의회 자문기관인 ‘미중경제안전보장 수정위원회’는 지난달 보고서를 내고 “중국군이 수면 위 수 m 높이의 저공을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대잠순항미사일 YJ18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 해군의 서태평양 작전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급해진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적극 개입에 나섰지만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20∼30년 후를 내다보며 움직이는 중국의 장기 포석에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미국이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 호흡조절 국면, 한국은 국익 지켜내야
미 태평양특수작전군(SOCPAC) 상급 정무관 출신으로 미 해군대학원에서 중국 문제 자문역을 맡고 있는 윌리엄 존슨은 9일 로이터 통신에 “앞으로 남중국해에서 미중 대립은 어느 정도까지 고조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국의 핵심적인 이익과 맞물려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이나 중국이나 물러서기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2013년 12월 남중국해에서 중국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 호위함이 미군 미사일 순양함에 약 450m까지 돌진해 미 함선이 긴급 회피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양국 모두 호흡을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면적으로 충돌하기에는 중국이 아직 역부족인 데다 이미 얽히고설킨 양국 경제도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11일자는 중국 인민해방군 상장(上將·한국군의 대장)인 류야저우(劉亞洲) 국방대학 정치위원이 국방성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논문에 주목했다. “일본 해군은 개전 후 4시간 안에 중국 동해함대를 섬멸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웃고 지나갈 얘기가 아니다. 중국이 지면 국제 문제가 국내 문제가 된다”는 내용이다. 신문은 “일본을 예로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싸우면 반드시 지고 체제도 흔들린다고 군을 설득하기 위한 논문”이라고 분석했다.
재정 악화 속에 매년 국방비 삭감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미국도 싸울 여력이 줄어들었다. 미국이 일본 등 동맹국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역할 증대를 요청하고 있는 것도 아시아태평양 방어의 부담을 상당 부분 동맹국에 떠넘기기 위한 행보다.
관심의 초점은 일본 자위대의 남중국해 진출 가능성이다. 일본은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6월 일본을 방문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발언이다. 당시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에게 “방문부대지위협정(외국 군대 주둔 조건을 정한 규정)에 관한 교섭을 일본과 시작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슈칸분�(週刊文春) 최근호는 장기적으로 미 해군이 요청하고 있는 자위대 P3C 대잠 초계기의 필리핀 주둔 가능성을 예고했다. P3C의 항속시간(한 번 연료를 주입한 뒤 비행 가능 시간)은 10시간 정도인데, 오키나와에서 남중국해까지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필리핀 주둔기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권은 한국에 대해서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외교부 동북아국장 출신의 조세영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10일 도쿄(東京)에서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은 해법을 내놓았다.
“영유권 문제에 끼어들게 아니라 ‘어떤 나라도’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결정권을 미중이 나눠 갖거나 어느 한쪽이 완전히 가져가는 구도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도 좋지 않다는 점을 적극 알려야 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