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파리 동시다발 테러]파리 테러현장 르포
‘13일의 금요일’ 밤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에서 15명의 희생자를 낸 파리 10구의 식당 ‘프티 캉보주’와 ‘카리용 카페’ 앞. 참사 발생한 다음 날인 14일 아침에 찾아가 본 현장은 아직도 도로에까지 피가 흥건히 고여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현장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불과 2.5km 떨어진, 파리의 ‘힙스터족’(대중적인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즐기는 부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 카페 정문은 ‘폴리스 라인’으로 봉쇄돼 있었고, 유리창에는 어지러이 난사된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카페 앞 도로의 횡단보도 위에까지 부상자들이 남긴 붉은색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남아 있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카리용 카페’ 정문 앞에 장미꽃을 놓고, 촛불을 켜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던 앙토니 마차스 씨(27)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카페 앞 테라스에 널브러져 있는 젊은이 10여 명의 시신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 주며 “내 친구도 여기에 있다”고 울먹였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꽃다발을 들고 와 출입이 통제된 공연장 대신 주변 건물 앞에 놓았다. 꽃다발과 촛불 사이에는 시민들이 써 놓은 메시지들도 놓여 있었다. ‘더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자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글이 적힌 종이들이 눈에 띄었다. 바닥에 꿇어앉아 흐느끼거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14일 낮 바타클랑 극장 인근 거리에는 독일 출신의 음악가 다비드 마르텔로 씨가 자전거로 바퀴가 달린 검은색 피아노를 끌고 와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을 연주했다. 그는 “죽이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고 종교도 없고.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봐요”라는 가사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14일 아침 파리에는 비까지 내린 데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날부터 사흘간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면서 엘리제궁에도 조기가 내걸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침묵 속으로 들어간 듯 우울하고 무거웠다.
정부가 경찰력에 더해 1500여 명의 병력을 시내에 긴급 투입하면서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원 의사당에는 몇 m 간격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뿐 아니라 자동차까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평소 보기 어렵던 군용 트럭도 의사당 앞에 세워져 ‘전시 상황’이라는 것이 실감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모든 집회와 행사는 취소됐고, 학교와 박물관, 도서관, 쇼핑센터 등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인 알드 프랑스의 교육청은 일제히 이날 관내 전 학교에 휴교를 공고하고 일선 학교는 학생들에게 e메일로 통지했다.
지하철 운행도 곳곳에서 중단됐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14일 대국민 연설에서 “19일까지 프랑스 내 모든 시위를 금지할 것”이라며 “각 지자체도 필요하다면 통행금지령을 내리라”고 권고했다. 이날 파리 시민들과 교민, 여행객들은 하루 종일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다.
다음 주 파리에는 샹젤리제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 점등식이 열릴 예정으로 본격적인 연말 시즌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몰려들 시기였다. 에펠탑 부근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희연 씨(37·여)는 “원래 2주 계획으로 관광을 왔는데 에펠탑 조명도 꺼지고, 박물관도 문을 닫아 서둘러 파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