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1>절망서 새삶 찾은 최혜영씨 116개월째 건보료 못내 수북한 독촉장 버거웠는데…
13일 오후 가을비를 맞으며 최혜영 씨가 포장마차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최 씨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의 포장마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세 가족 생계터전 포장마차
16일 오후 2시 전남 여수시 교동시장 하천가 골목길. 최혜영(가명·32·여) 씨가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를 맞으면서 리어카를 끌고 왔다. 최 씨는 2시간 동안 냉장고, 탁자, 의자 등을 나르고 안줏거리를 진열하며 영업 준비를 했다. 그는 포장마차 서빙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영업 채비를 마친 그는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했다. 궂은비를 맞으며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초등학생 남매의 저녁식사를 챙긴 뒤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왔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귀가한 그는 서너 시간 쪽잠을 자고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위해 일어나 또다시 고된 하루를 시작한다. 최 씨는 “남들이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두 아이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애들에게 간식조차 제대로 사주지 못할 때는 또래들처럼 멋을 부리고 즐기고 싶은 상상마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116개월째 쌓인 건강보험 독촉장
최 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했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인 여수로 내려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2004년 병원에 근무할 당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3년 만에 이혼했다. 최 씨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친정에 몇 천 원을 빌리러 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혼 후 마트와 정육점에서 일하던 그는 1년 전부터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를 돕고 있다. 포장마차는 형편이 어려운 모녀를 위해 친척이 마련해줬다. 다리가 불편한 최 씨의 어머니가 요리를 하고 그는 서빙을 하고 있다. 최 씨는 포장마차에서 한 달에 90만 원 정도를 벌지만 생활비는 늘 부족하다.
우편함에 쌓인 빨간색 줄이 그어진 각종 공과금 독촉장은 힘든 결혼생활과 홀로 두 자녀를 키우는 버거움의 자국이었다. 최 씨는 “열심히 살아도 독촉장이 항상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 ‘왜 저렇게 살까’ 하고 비웃을 것 같다는 자격지심마저 든다”고 했다.
올 6월 독촉장이 너무 많이 쌓여 단전·단수 위기에 절망하고 있을 때 아들(10)이 학교에서 위기가정 지원사업 신청 안내문을 가져왔다. 최 씨는 위기가정 지원사업을 신청해 전기료, 도시가스요금 등 급한 불을 껐다.
최 씨를 돕고 있는 여수 쌍봉종합사회복지관 한정수 팀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후원한 위기가정 지원사업비 200만 원으로 체납한 공과금 370만 원 가운데 일부를 납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은 부족한 공과금을 해결해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최 씨는 “위기가정 지원사업이 절망의 순간에 희망 불씨가 됐다”며 “애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