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의 주거 계획을 미리 세워두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한 노부부가 식탁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
먼저 결혼해 분가한 자녀들과 다시 같이 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2013년 서울시에서 65세 이상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가 사별하게 되면 자녀들과 다시 같이 살겠는가’를 조사한 결과 ‘같이 살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20% 정도에 그쳤다. ‘자녀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살겠다’는 응답이 50%, 실버타운 같은 노인 전용 주거시설에 입주하겠다는 답변이 30% 정도를 차지했다. 80% 정도가 본인들이 불편해서 혼자 살겠다는 것이다.
또 부부가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노후에 혼자 사는 기간이 의외로 길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부가 사별 후 혼자 사는 기간이 남자는 평균 9∼10년, 여자는 15∼16년 정도이다. 세상을 떠나는 날이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오는 게 아니라는 점도 있다. 생각보다 오래 살면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정도를 앓으며 돈 문제나 외로움 등으로 고생하다가 떠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자녀들 분가 후 부부 단둘이만 산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병을 얻어 간병하며 생활한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남는다’ ‘남은 한 사람도 병을 얻어 간병이 필요하다’ 같은 각각의 시기에 맞는 주거 형태를 미리부터 생각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자녀가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퇴직한 이후의 주거 형태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경제적 여유가 있어 넓은 집을 갖고 있으면 자녀들이 자주 와서 머물다 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 발달과 자가용의 보급으로 웬만한 거리는 당일로 다녀가는 시대가 됐다. 가족 모임 또한 밖에서 갖는 일이 늘어난다. 가사 도우미를 쓰기도 어렵다. 노인 세대가 지나치게 넓은 집에서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부유층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가 인기를 얻어왔지만 노년에도 고층 아파트가 바람직한 주거 형태인지는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고독사 관련 보도를 볼 때마다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노인에게는 이웃집만 한 복지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고령 세대는 66㎡(약 20평) 안팎의 소형이면서 쇼핑 의료 취미 오락 친교까지를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주거 형태를 선호한다.
아파트 가격 또한 과거에는 대형 아파트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재테크 면에서 유리했다. 그러나 재개발 붐의 영향으로 대형 아파트 공급이 급속하게 늘어난 반면 핵가족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사정이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전체 가구 중 1, 2인 가구의 비율이 1980년에는 15%에 불과했다가 2013년에는 52%로 늘었고 2035년에는 68%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부분의 가구가 1, 2인 가구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형 아파트나 대형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살던 집의 크기를 줄이면 목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관리비나 유지비 등 고정비용이 감소하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가사에 드는 시간과 노동을 덜 수 있다는 점 또한 작은 집의 매력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기대하며 넓은 마루와 소파를 매일 닦기보다 잠깐의 수고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며 허리에 휴식을 주는 것도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