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때 한 사회환원 약속 지켜… 과학 손주들, 부자 나라 만들어주길”
조정자(왼쪽) 이승웅 씨 부부가 16일 KAIST 강성모 총장에게 7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뒤 기탁 증서를 받고 있다. KAIST 제공
16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관 회의실에 허름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들어왔다. 회의실 한쪽 벽에는 ‘이승웅 조정자 부부 발전기금 약정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부부는 강성모 총장에게 상가 등 75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탁했다. 두 사람은 시종 밝은 표정이었다. 강 총장은 “두 분의 뜻을 받들어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부부는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평소 주변에 소문난 구두쇠였다. 조정자 씨(72)가 이날 행사장에 신고 온 양말은 시장에서 파는 1000원에 두 켤레짜리였다. 그마저도 여기저기 꿰맨 자국이 있었다.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는 6년 전에 사서 그동안 밑창이 떨어져 8번 접착제로 붙였는데 너무 멀쩡해요.” 남편도 뒤지지 않았다. 이승웅 씨(74)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고 싶어도 그 돈으로 고기 한 근 사 가면 식구들 모두 잘 먹을 수 있겠다며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도 5000원이 넘는 밥은 사 먹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측은 “두 분의 집을 방문했을 때 운동화가 너무 낡은 것을 발견해 치수를 알아 두었다”며 이날 두 사람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했다.
두 사람은 결혼 당시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의미 있는 곳에 쓰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기부할지를 놓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종종 다투기도 했다. 가난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이 씨는 소년소녀가장이나 양로원 등 당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나눠 주자고 했다. 하지만 조 씨는 “가난은 나라도 못 막는다. 당장 배를 채워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좋은 머리를 키우는 데 써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아내 조 씨가 이겼다. 이 씨는 “아내에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무 연고도 없지만 KAIST가 과학기술 인재를 잘 양성해 줄 것으로 믿고 기탁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빛내는 인재들을 매스컴에서 보면 환호를 지르면서 내 자식처럼 여겼다”며 “이제 나도 우수한 손자손녀(KAIST 학생들)를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돈 많은 분들은 자식한테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의미 있게 돈을 쓰길 바랍니다. 그로 인해 이런 풍조가 널리 확산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