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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 현장서 ‘임신부 구조’ 영웅, 이후 테러범 인질돼…

입력 | 2015-11-17 12:00:00


89명이 목숨을 잃은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지상 15m 높이 창문에 매달려 있던 임신부를 구해낸 ‘영웅’의 정체가 밝혀졌다.

16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13일 파리 11구 볼테르 가에 있는 ‘바타클랑’ 공연장 3층 창문에 매달린 채 구조를 기다리던 임신부 A 씨를 구해낸 ‘영웅’의 정체가 밝혀졌다며 그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앞서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5일 “파리 테러 상황에서 생명을 구한 영웅으로 보이는 이 사람을 아시는 분은 연락 바란다”며 자사 기자가 촬영한 동영상을 소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테러범들이 바타클랑 극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던 상황 속에 건물 3층 창문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이 여성은 “제발 도와주세요. 전 임신부예요”라고 울면서 외쳤다.

잠시 후 옆 창문에 매달려 있던 한 남성이 자리를 옮겨 여성이 매달린 창문 안쪽으로 이동하더니 여성의 팔을 잡고 끌어올린다.

다행히 임신부는 안전하게 대피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후 며칠 동안 영상 속 ‘영웅’의 정체와 생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던 상황. 해당 영상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임신부 A 씨의 지인들이 트위터를 통해 캠페인을 벌인 결과, 드디어 ‘영웅’의 정체가 밝혀졌다.

세바스티앙(Sebastian)이라고만 알려진 이 남성은 테러범들이 무차별적인 살상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위험에 처한 임신부 A 씨를 구해냈다. 세바스티앙은 현지 언론 라 프로방스와의 인터뷰에서 바타클랑 극장 테러 당시의 상황과 A 씨를 구해낸 뒤 테러범들의 ‘인질’이 된 과정 등을 상세히 털어놨다.

그는 “칼라슈니코프(자동소총)를 든 남성 2~3명이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쏴 죽였다. 내 옆에 있던 남자의 머리에 총탄이 박히는 걸 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무대 뒤쪽에 비상구가 있다는 소리에 시신들과 부상자들 사이로 기어서 이동했다. 옷이 피투성이가 됐다”며 “테러범 한 명이 재장전하는 순간을 이용해 무대 뒤로 피했다. 하지만 비상구는 없었고, 계단을 기어올라 발코니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세바스티앙이 A 씨를 만난 순간이 바로 그 때였다. 3층 창문으로 나와 통풍구에 매달려 있던 그는 힘겹게 창문에 매달려 있는 A씨를 목격했다.

그는 “A 씨는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날 받아줄 수 있다면 뛰어내리겠다’고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상 15m 높이였고, 아래 상황 역시 혼돈 그 자체였다”며 “난 창문 통풍구에 5분 정도 매달려 있었다. 그 때 기운이 다 빠진 A 씨가 자신을 안에서 끌어올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세바스티앙은 원래 숨었던 곳에 다시 숨었다. 하지만 결국 테러범들에게 발각됐고, 그는 ‘인질’이 됐다.

그는 “약 5분 뒤 내 다리를 겨눈 칼라슈니코프의 총구가 느껴졌다. 테러범들은 ‘거기(창문)에서 내려와서 땅에 엎드려’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세바스티앙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우린 당신들이 시리아에서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고통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나? 이제 당신들도 시리아에서 사람들이 매일 겪는 공포를 느낄 거다. 그건 전쟁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우린 무고한 이들을 학살할 것이다. 모두에게 이를 알려라”고 말했다.

테러범들은 이어 경찰과 대화를 원한다며 인질들을 창문에 세웠다. 세바스티앙은 폭탄 벨트를 찬 테러범들의 지시에 따라 경찰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외쳐야했다. 경찰이 접근할 시 모든 걸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한 테러범들은 5분마다 인질을 한 명씩 죽여 시체를 창 밖으로 던지겠다고 위협했다.

세바스티앙은 “내 생애 가장 긴 순간이었다. 희망이라는 감정부터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온갖 감정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세바스티앙이 모든 걸 내려놓은 순간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인질 2명을 인간방패로 내세웠지만, 경찰은 이를 피해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했다.

그는 “섬광 수류탄이 내 발 앞에 떨어졌고 난 지금이 도망칠 때라고 생각해 몸을 내던졌다. 무장한 경찰이 진입하면서 엎드린 내 몸을 짓밟았지만, 내 생애 가장 행복한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와 자살폭탄 공격 등 테러로 최소 132명이 사망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14일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