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3호/현장 전문가의 대입 전략⑪] 우등생일수록 좌절도 커…지나고 보면 실패는 성공보다 값진 경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전 기도하는 수험생.
몇 년 전 얘기다. 학교 시험이든,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고사)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학생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근 지역까지 공부 잘하기로 소문이 쫙 퍼진 학생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 실력에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에서도 또래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학교 추천을 받아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 의예과에만 지원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만으로도 충분히 정시모집에서 서울대 최고 인기학과를 갈 수 있기 때문에 수시모집에서 다른 대학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시중에 나온 문제집은 거의 다 풀어봤기 때문에 수능을 준비하는 데도 여유가 있고, 수능 날짜가 바짝 다가와도 긴장하지 않는다.
마침내 수능일.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머리가 말끔하지 않고 팔과 다리가 노곤해 걷는 것조차 귀찮았다고 한다. 1교시 국어시험을 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답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떤 문제는 두 번씩 읽어도 뜻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았단다.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라 두 문제는 풀지도 못했다. 이렇게 1교시를 힘들게 치르면 머리가 지쳐버려 2교시 수학시험도 망친다. 점심시간에 좀 쉬고 난 뒤 화난 듯이 문제를 풀어 오후 시험은 모두 만점을 받았다.
수능은 잘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각 과목의 난이도에 따라 자신한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아무리 완벽한 실력을 지녔다 해도 수능만큼은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 본 수험생도 있지만 크게 실패한 수험생도 많다. 사실 성공한 수험생보다 실패한 수험생이 몇 갑절 많다. 지나고 보면 실패는 성공보다 값진 경험이다. 성공은 한 마디를 성장케 하지만 실패는 차원이 다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을 보면 성공보다 훨씬 큰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추락에서 다시 튀어 올라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경우를 많이 본다. 수능 점수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 숫자가 좀 낮아졌을 뿐, 자신의 가치나 능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엄연히 존재한다.
비둘기한테 무시당한 학생은 그 뒤 두문불출하고 면접 준비를 했다.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공부하면서 출제 예상 문제를 뽑아 달달 외울 정도로 준비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면서 거울을 보며 말하고 아버지 앞에서 말하고 밤하늘에 뜬 달을 보고 말했단다. 결국 그는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의대에 붙었다.
올해 수능을 본 수험생은 대개 1997, 98년생이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어렵던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생존 능력이 뛰어나다. 수능을 좀 못 봤어도 제 밥그릇은 갖고 나왔다. 너무 탓하지 말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성공했다. 무조건 격려해주자!
신동원 휘문고 진학교감 dwshin56@sen.go.kr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1.18.~11.24|1013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