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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늦은 나이에 쓰는 젊은 시, 이른 나이에 쓰는 노인 소설

입력 | 2015-11-18 03:00:00


이번 주 출간된 ‘눈부신 꽝’은 김연숙 씨의 첫 시집이다. ‘꽝은 당연히 흰빛/지금 그 여자 머리 위를 한번 보세요//눈부신 꽝입니다’ 같은 표제시 등 시 세계가 독특하다. 평론가 황정산 씨는 김 씨의 작품에 대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일상적인 언어들로 살아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으며 이 긴장이 시를 젊게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 황정산 평론가가 ‘시 세계가 젊다’고 분석한 시인은 1953년생이다. 예순이 넘은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낸 것도 눈에 띄지만, 약력을 보니 우리 나이로 쉰 살에 시인이 됐다(2002년 데뷔). 등단 자체가 늦었다는 얘기다.

최근 시집 ‘발 달린 벌’을 낸 권기만 씨도 늦깎이 시인이다. 그는 53세였던 3년 전에 등단해 56세인 올해 첫 시집을 갖게 됐다. 시집 원고를 본 평론가 신형철 씨가 추천사를 쓰고 싶다고 자청했을 정도로 평이 좋았다. 시단에서의 중장년 신인들의 등장은, 고령화 시대에 따른 변화이기도 하지만, 탄탄한 교육과정에 힘입은 바 크다. 시인 서효인 씨는 “전국 각지의 문화센터 시 강좌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 창작 교실이 많아진 데다,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이 강의를 맡아 수업의 질이 ‘고(高)퀄리티’를 보장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시 쓰기 강의에 대한 중장년의 수요가 크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최영미 시인은 올해 관악구청의 시 창작 교실에서 강의를 하면서 “은퇴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시 쓰기를 배우고 싶다며 매주 빠지지 않고 충남 공주의 집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에 참여하셨다. 나이가 드셨는데도 시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고령화 시대가 소설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사실 소설은 워낙 중노동 작업인 만큼 나이 든 신인이 도전하기는 수월치 않은 영역이다. 치매에 걸린 70대 남자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당신’을 쓴 박범신 씨도, 60대 건축가 사내의 옛 사랑의 기억을 담은 ‘해질 무렵’을 낸 황석영 씨도 모두 70대 작가이지만, 일찍이 청년 때 문학적 이력을 시작한 소설가들이다.

노년의 작가가 노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세대의 이야기를 쓴다’는 관성을 깨고 최근 젊은 작가들이 노인 문제를 다룬 소설을 잇달아 발표해 눈길을 모은다. 김수 씨(34)는 올해 창비 신인문학상 수상작 ‘젠가의 시간’에서 치매 노인이 아홉 살 여자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담았고, 홍희정 씨(37)는 단편 ‘앓던 모든 것’에서 여성 노인이 젊은 청년을 관찰하는 모습을 그렸다. 윤이형 씨(39)의 단편 ‘대니’에서는 할머니와 아이 돌보는 로봇의 로맨스가 그려진다. 지난해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김기창 씨(37)의 장편 ‘모나코’는 좋은 집에 살면서 돈도 많고 취향도 고급인 할아버지의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다. 젊은 소설가들의 노인 문제에 대한 문학적 포착은, 생물학적으로는 적잖은 나이지만 시 세계는 낡지 않은 시인들이 나오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지만, 이 또한 주목된다. 소설이 현실의 반영이자 가까운 미래의 이슈를 잠재적으로 감지한다는 점에서 고령화 문제가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갖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