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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수도관’ 내시경 보여주니… “믿고 마셔요” 1%→19%로

입력 | 2015-11-18 03:00:00

[수돗물이 환경이다]<上>파주시의 ‘스마트워터시티’ 실험




《 지난주 경기 파주시 교하지구 동문굿모닝힐 아파트 한 단지에 들어서자 “매우 좋음”이라고 적힌 대형 전광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탁도, pH 및 염소농도 등 아파트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수질 정보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인근의 수돗물 음수대에는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이나 장을 보고 오는 주민이 종종 발길을 멈추고 목을 축였다. 이곳은 전국에서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주민이 가장 많은 아파트 단지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수돗물 직접 음용률 1%였지만 지금은 19.3%(지난해 10월 기준)가 넘는다. 주민 10명 중 2명은 수돗물을 바로 떠서 마시는 셈이다. 》

지난해 한국수자원공사가 파주 교하·적성지구 아파트 단지 5곳과 초등학교 2곳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워터시티’ 사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4월부터 아파트 물탱크에 폐쇄회로(CC)TV와 수질계측기를 설치하고 여기서 실시간으로 측정한 결과를 전광판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각 가정에 수도꼭지의 내시경 검사와 수질 검사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불신 씻어드립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워터코디’가 10일 경기 파주시 교하지구의 이정욱 씨 집에서 내시경 장비로 수도꼭지 내부를 검사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 씨가 사는 아파트를 포함해 파주 시내 5개 아파트 단지에서 ‘스마트워터시티’ 사업을 벌이고 있다. 파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눈으로 확인하니 믿음이 가죠”

이날 만난 주부 이정욱 씨(56·여)는 1년 6개월째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이 씨는 그 이전 6년 동안 페트병 생수를 사다 마셨다.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수돗물은 음식을 조리할 때만 썼다.

이 씨는 단지가 스마트워터시티 시범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해 단순한 호기심에서 수돗물을 직접 마셔 봤다고 했다. 그는 “일단 마셔 보니 생수와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며 “수도꼭지 내시경 검사에서도 배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 실시간으로 수질 정보를 눈으로 확인한 후 생수 대신 수돗물을 마신다”고 말했다.

실제 수돗물 수질은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수돗물은 현행 먹는물관리법 기준을 충족할 뿐만 아니라 몸에 유익한 칼슘,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 함량은 상당수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 물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수자원공사 파주수도관리단 관계자는 “수도꼭지 상태와 수질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게 수돗물 음용률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올해 4월부터 스마트워터시티 시범 대상을 파주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2단계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여전히 수돗물 마시기 힘든 현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일반적이지 않다. 대다수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는 수돗물보다는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서울, 경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수돗물 음용률 높이기 정책과 캠페인을 내놓고 있지만 나머지 상당수 공공기관은 여전히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조차 수돗물 마시기가 불편한 게 현실이다.

본보 기자가 서울 청계천,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인근의 수돗물 음수대를 직접 찾아봤다. 하지만 거의 매일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광장에 설치된 음수대는 한두 곳뿐. 그마저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청계천을 따라 설치된 음수대도 2개뿐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수돗물 음수대는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로 내려가는 지하통로 구석에 있었다. 30분 동안 시민 600여 명이 음수대를 지나갔지만 이용한 사람은 5명에 그쳤다. 서울광장에는 음수대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시청사 안에 음수대가 여러 개 있었지만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찾기 힘든 위치였다.

정부와 공공기관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올해 4∼8월 수돗물시민네트워크가 전국 광역지자체와 중앙부처 등 32개 기관의 수돗물 음수대 설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 대전 부산 시청 등 8곳에만 수돗물 음수대가 있었다. 이런 결과가 발표되자 지난달 환경부는 뒤늦게 세종정부청사 내에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초 시청 곳곳에 냉온수기 기능은 물론이고 마신 물의 양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 음수대를 설치했다. 올해 2월에는 민간 건설사인 코오롱글로벌과 2017년 완공되는 신규 아파트 단지 각 가정에 붙박이 형태의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하기로 업무협약도 맺었다. 또 서울광장을 포함해 공공장소에도 음수대 설치를 확대할 예정이다.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공공기관 내 음수대를 확대하고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나 회의 때 페트병 생수 반입을 제한하는 조례안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의 김동근 사무국장은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려면 단순히 수돗물의 안전성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페트병 생수 반입 제한, 수돗물 음수대 확대 등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페트병 생수 대신 수돗물… 소나무 年 51그루 심는 셈 ▼

사회적 비용 年 2조원 절감 효과

페트병-정수기 쓸 때 탄소배출량 수돗물 바로 마실 때의 1300배


식수로서 수돗물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수질과 맛은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에 뒤지지 않지만 값은 훨씬 싸다. 전문가들은 수돗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연간 2조 원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수돗물의 경제적 가치 재고찰 필요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4인 가족이 수돗물을 마시면 최대 월 2만 이상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인 가족이 마시는 식수량을 월 72L로 가정하고 수도 요금, 페트병 생수 구입비, 정수기 유지관리 비용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72L 기준 수돗물 요금은 32원이지만 같은 양의 물을 페트병 생수로 마시면 1만1825원을, 정수기는 682배가량 많은 2만1881원을 내야 한다. 가정에서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 대신 수돗물을 마신다면 연간 14만∼26만 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또 수돗물을 마시면 환경 보호에도 큰 도움이 된다. 페트병 생수와 정수기는 수돗물에 비해 최대 1300배 많은 에너지를 들여 생산한다.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탄소성적표에 따르면 수돗물의 탄소배출량이 가장 적었다. 탄소성적표는 제품의 생산에서 유통,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표시한 것으로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를 판단하는 지표다.

전 교수팀이 이 지표를 바탕으로 하루 물 섭취 권장량 2L 기준 수돗몰, 페트병 생수, 정수기의 탄소배출량을 비교한 결과 페트병 생수의 탄소배출량은 238∼271g, 정수기는 171∼677g으로 집계됐다. 반면 수돗물의 탄소배출량은 0.51g에 불과했다. 페트병 생수 대신 1년 동안 매일 2L씩 수돗물을 마신다면 어린 소나무 51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

또 수돗물을 마시면 먹고 버린 빈 페트병으로 인한 환경 파괴도 줄일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진 페트병은 전 세계적으로 토양, 해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페트병 10개 중 2개는 소각되거나 땅에 매립되고 있다. 나머지 80%만 다른 제품의 원료로 재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유리병과 달리 페트병은 재사용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장기적으로는 페트병 생수로 인한 지하수 고갈도 우려된다”며 “경제성은 물론 환경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수돗물 마시기가 더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파주=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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