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형성에 상속-증여 기여 비중, 1980년대 27%→2000년대 42% 국민총소득중 상속금액 비율도 1980년대 5%서 2010년대 8.2%로 경제 성장판 닫혀 자수성가 힘들어… 富의 불평등 갈수록 심해질수도
지난해 결혼한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직원 김모 씨(34)는 ‘부모가 최고의 자산’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부모가 집값의 3분의 2 정도를 빌려준 덕에 서울에 6억 원대의 신혼집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에 매달 수십만 원의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김 씨는 부모에게는 돈을 천천히 갚기로 하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반면 김 씨의 대학 동창인 정모 씨(34)는 올해 안에 하려던 결혼식을 내년으로 미뤘다. 몇 년 전 지급보증을 섰던 아버지 사업이 최근 기울면서 1억5000만 원을 날려서다. 정 씨는 아버지가 쓴 카드 빚도 매달 갚아야 한다. 정 씨가 회사에서 받는 월급 수준은 친구 김 씨와 비슷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의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불평등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제안한 방법을 이용해 한국의 지표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2030세대가 열심히 일해도 부유한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빈부격차를 뒤집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교수는 최근 이런 현상이 가속화된 이유로 한국의 저성장과 급속한 고령화를 들었다. 고도성장기에는 부모에게서 자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자수성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면서 기회가 줄었다는 것이다. 또 고령화로 투자와 저축이 감소하면서 상속, 증여가 중요한 사회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삶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에 크게 좌우된다는 소위 ‘금수저·흙수저 계급론’에는 상속에 대한 우려가 반영돼 있다”며 “현재 한국에서 상속이 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모의 부가 자식 세대로 이전되는 현상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는 “축적한 자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면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져 효율성 측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다만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속세를 제대로 집행해 부의 일부를 사회에 반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