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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문겸]규제 개혁, 민간에게 배워라

입력 | 2015-11-18 03:00:00

중소기업 옴부즈만의 시선 (下)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

동대문 상가에서 의류를 생산해 수출하는 S사는 4월 열린 섬유제조업체 규제 간담회에서 너무 긴 검사 절차에 분통을 터뜨렸다. 해외 바이어의 국내 체류기간은 3일 안팎인데 섬유제품의 검사는 통상 5일 이상이 걸려 수출에 어려움이 크다는 호소였다.

하지만 소관 부처에 확인한 결과 관련 제도는 2012년 품질인증을 받은 원단을 그대로 가공한 제품은 검사를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이미 개선 완료된 사안이었다. 문제는 S사가 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이 사실을 모르고 힘든 통관 절차를 거치며 불필요한 수고를 거듭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기업인들과 갖는 규제간담회에서는 매번 6, 7건의 규제 개선 건의가 쏟아진다. 하지만 간담회가 끝난 뒤 확인해 보면 이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소관 부처가 규제를 개선한 것이 많다.

사실 한국만큼 규제개혁에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는 나라는 드물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솔로몬의 지혜를 찾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규제 당사자인 기업인들은 이미 규제가 해결된 사실을 모르는 일이 부지기수다. 기업과 정부가 따로 움직이다 보니 규제 개선의 효과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규제 개선 체감도 조사 결과가 40점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기업들은 정부의 제도, 규정 변화를 뒤따라 잡으려고 많은 돈을 내고 정책사업 컨설팅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제품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동통신회사나 보험사, 신용카드회사 등은 연령, 성별은 물론이고 취미와 여가패턴까지 상세하게 조사해 차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특성을 세밀하게 이해하지 못한 기업들은 이제 설 땅을 잃어버리고 있다.

정부도 규제 개선의 결과를 알리기 위해 과거와 다른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포그래픽이나 웹툰 등을 제작해 기업들이 개선된 제도를 쉽게 이해하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 개선을 건의한 기업에는 직접 결과를 안내하는 서비스에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중소기업’이라는 하나의 정책대상으로 묶여 있지만 국내 기업체 가운데 99%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중소기업은 업종과 업태, 생산하는 제품에 따라 필요로 하는 정보가 천차만별이다. 기업 현장에서 바쁘게 뛰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에게 ‘관심 있으면 직접 찾아보라’는 식의 공급자 중심 정책홍보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규제 개선 과정에서, 또 정책 수립 과정에서 직접 영향을 받는 기업 고객을 선별해 의견을 수렴하고 규제 개선 및 정책 변화의 내용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개선을 건의하지는 않았지만 동일 업종으로 같은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기업들에 규제 개선 결과를 알리는 ‘일 대 다(多)’ 메일링 서비스가 구축돼야 한다.

또 기업고객 특성별로 적용받는 규제를 분류해 알려주는 시스템을 통해 기업인들이 필요한 규제 정보를 ‘원클릭’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가 개선되더라도 기업이 그 사실을 모르면 그저 ‘제자리 뛰기’일 뿐이다. 오히려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정부의 노력만 낭비하는 일이다. 기업들이 정부의 규제 개선 노력의 10분의 1만 알아도 지금보다 규제 개선 체감 효과와 정부 신뢰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