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8>문화 접목한 광주 대인시장 가게들
광주 대인시장에서는 다른 전통시장에선 찾아볼 수 없는 ‘예술 아이템’으로 무장한 청년상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마술여행’의 마술사 김영재 씨, ‘아트앤더치’의 조각가 이재문 씨, 마술사 고기환 씨, 나정현 씨(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가 각자의 예술 아이템을 들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라도 사람들은 놀라움과 아쉬움을 표현할 때 사투리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어머나’와 같은 친근한 감탄사다. 이 말이 광주 대인시장에서 일하는 청년상인들을 가리키는 브랜드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광주대인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은 무한한 잠재력과 밝은 에너지를 가진 변화무쌍하고 놀라운 존재라며 대인시장 청년상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왐마’를 선택했다.
12일 직접 찾은 광주 동구 제봉로 194번길 광주 대인시장은 채소, 육류, 생선 등을 파는 전형적인 전통시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과일노점 상인을 사실적으로 그린 벽화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색 점포, 아트 갤러리 등을 보는 순간 “왐마!” 하는 감탄사가 나올 법하단 생각이 들었다.
○ 커피향을 품은 예술조각 작품들
“여기에 붙은 사진이 바로 제가 직접 만든 작품입니다”
12일 만난 이 점포의 청년사장 이재문 씨(34)는 점포 앞쪽에 진열된 더치커피 한 병을 들어 기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커피병에는 실제로 점포 안에 전시된 작품 이미지가 프린트돼 붙어 있었다. 시중에는 볼 수 없는 아트앤더치만의 상품이다. 이 씨는 원래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2013년 6월부터 대인시장 내 점포를 작업실로 활용해 작품활동을 하던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커피전문점을 내게 된 데에는 대인시장에서 격주 금·토요일에 개최하는 야시장에서 만난 고형석 씨(38) 덕분이었다. 고 씨는 ‘대인예술야시장’에서 더치커피 원액을 판매하던 청년 상인으로, 지난해 8월부터 이 씨의 작업실 앞에서 물건을 팔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 씨는 “요즘 작가들은 창작활동 때문에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거두는 커피 수익금으로 창작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예술성과 상업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면 청년이나 중장년층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재밌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전통시장을 마술쇼의 무대로 만들다
대인시장 중간의 골목 한쪽으로 나오면 마술용 카드의 이미지가 크게 붙은 미닫이문이 보인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변변한 간판도 없어 지나치기 쉬운 이곳은 마술사 김영재 씨(30)가 문을 연 ‘마술여행’이라는 점포다.
김 씨는 올 2월 광주 대인시장에 점포를 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마술 전문점포를 연 것은 대인시장이 ‘예술시장’을 표방한다는 특성 덕분. 김 씨는 “야시장 행사에 몇 번 참여했는데 이곳에 먹거리 볼거리는 많았지만 퍼포먼스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며 “이 시장에서 마술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고향 후배인 나정현 씨(22)와 학교 후배 고기환 씨(20)와 팀을 이루어 활동 중이다.
이 가게는 격주 주말에만 열리는 야시장 때만 연다. 김 씨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간단한 마술공연을 보여주고, 마술의 원리와 비밀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마술에 흥미를 느끼는 어린이 고객이 많아 특히 가족단위의 방문이 잦은 편이다.
시장에서의 마술공연에 대해 김 씨는 “길거리 마술은 훨씬 스릴이 있다는 점에서 극장 공연과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공연장에서는 음향, 조명 등의 도움을 받아 더 극적이고 화려해 보이지만 시장 안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통제하면서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시장 안에서는 눈속임 마술보다는 관객들이 함께할 수 있는 참여형 마술 위주로 선보인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른 마술사들이 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토대로 시장에 온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공연을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상품 팔고 노하우 나누고… 전국 청년상인 축제 한마당 ▼
대인시장서 50여명 모여 행사, 특화상품 눈길… 콘퍼런스도 열어
7, 8일 광주에서 열린 ‘대인시장 청년상인 페스티벌’에서 청년상인들이 특별 부스에 진열해둔 다른 상인들의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광주대인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제공
대인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은 7, 8일 양일간 대인시장 일대에서 ‘대인시장 청년상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전통시장 청년상인과 사업단 관계자 50여 명이 모였다. 그중에는 동아일보가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를 통해 소개했던 경북 김천시 황금시장의 위창효 씨(37), 서울 구로시장 영프라쟈의 윤지혜(28·여) 김유진 씨(24·여)도 있었다.
청년상인들은 이날 특별 부스를 만들고 자신들이 갖고 온 물건들을 판매했다. 판매 외에도 거리음악 마술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함께 펼쳐졌다. 이틀 동안 오후 3시에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럭키한 박스’ 이벤트도 열렸다. 럭키한 박스는 청년상인들이 판매하는 상품이나 점포 이용권 등을 임의로 넣은 종이 상자를 의미한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를 방문객들이 1만 원을 내고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든 행사였다. 상자 중에는 은공예품 커피용품 등 최대 7만 원어치의 물품이 들어있는 상자도 숨어 있어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업단은 이렇게 ‘럭키’한 상자 총 100개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전국 단위 규모의 사회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후 7시 30분부터는 ‘시장에서 장사하기’를 주제로 청년상인들이 모여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는 청년상인들이 전통시장에서 창업을 진행하며 겪고 있는 애로사항이나 서로의 비전을 나누도록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김유리 대인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사무국장(31·여)은 “전국의 전통시장에서 장사하는 청년상인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고 동지애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정부의 지원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자치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고 말했다.
서인희 대인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운영팀장(32·여)은 “앞으로 서로의 사업 장소를 릴레이로 방문하며 이런 교류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