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산 넘고 물 건너 시집와서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신랑은 장님이었다. 신부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친정엄마는 중매쟁이를 붙잡고 어떻게 그렇게 속일 수가 있냐고 따졌지만 중매쟁이는 “내가 멀어서 흠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그 신부는 결혼 첫해에는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의 손을 놓고 가버리면 누가 이 사람의 손을 잡아줄꼬.” 그 이후 할머니는 평생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친정이 예서 멀긴 정말 멀어. 그래서 자주 못 갔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런 것도 책이 될까요?”라고 내게 묻는 그를 부추긴 것은 내 집 마당을 쓰는 것이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포내리라는 작은 마을을 기록하는 것이 결국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는 일이 되고, 이렇게 자진하여 빗자루 들고 구석구석을 쓸어 담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방대한 자료가 남게 될 것이 아닌가.
요즈음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지만 내 집 마당은 쓸지 않으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멀다는 해석이 달랐던 중매쟁이와 친정엄마처럼 눈먼 논쟁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