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성적이 좋든 나쁘든 수험생들은 한동안 잠에 빠질 게 틀림없다. 사실 이 땅의 수험생들은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려 왔다. 하루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四當五落)’이 2002년 국립국어원 신어(新語)에 오를 정도니. 그러다 보니 수험생들은 늘 ‘개(改)잠’을 자기 일쑤다. 왜 있잖은가. 자명종을 맞춰 놓지만 졸음에 못 이겨 자명종을 끄고 다시 자는 것 말이다.
개잠은 깼다가 다시 자는 그루잠과 두벌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사로잠과 닮았다. 같은 ‘개잠’이지만 동물인 개에 비유한 것도 있다. 개처럼 머리와 팔다리를 오그리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잠인데, 설치는 잠을 이르기도 한다. 피곤할 때 잠깐 자는 것을 아시잠 혹은 초벌잠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 쓰는 말이다.
다음은 잠자는 모습.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잠은 새우잠, 꼿꼿이 앉은 채로 자는 잠은 말뚝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자는 잠은 돌꼇잠이다. 옷을 입은 채 아무데나 쓰러져 자는 잠은 등걸잠,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귀여운 잠은 나비잠이다. 그런가 하면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자는 도둑잠, 남의 발치에서 자는 발칫잠, 밖에서 자는 한뎃잠, 비좁은 방에서 여럿이 모로 끼어 자는 칼잠 또는 갈치잠, 병중(病中)에 정신없이 계속 자는 이승잠 등 서러운 잠도 있다.
수험생 여러분, 성적은 잠시 잊고 단잠에 빠져보면 어떨지. 신은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 현세의 우리들에게 희망과 잠을 주었다(‘인간론’·볼테르).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