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와의 세계대전] 反IS 공조 전선 확대
‘신(新)냉전’ 대결을 벌여 왔던 미국과 러시아가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를 계기로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를 폭격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협력 자세를 보임에 따라 반(反)IS 공조 전선이 확대될 조짐이다.
AP통신은 17일(현지 시간) 러시아가 IS의 수도 격인 시리아 락까 지역에 대한 장거리 폭격을 감행하면서 카타르 소재 미군 중부사령부에 폭격 정보를 사전에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러시아의 태도는 기존과는 다른 것”이라며 “미국과 러시아의 공조가 IS와의 전쟁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피터 쿡 미 국방부 대변인도 “아직 군사적으로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협조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필요한 정보는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요한 진전”이라며 공조 사실을 확인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16일 “미국이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본보 18일자 A21면 참조 ) 워싱턴 안팎에서도 ‘전략적 연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의 사전 통보는 전날 파리를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시리아 휴전안’을 거론한 뒤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미국 기자들에게 “시리아에서 휴전과 정치체제 이행이 있기 전까지는 (국가 간) 협력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러시아의 희망사항을 건드렸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집권 세력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지금까지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미국이 알아사드 정권의 유지를 전제로 한 휴전 카드를 꺼내면서 러시아가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는 관측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미-러의 공조를 가장 바라는 나라는 테러 피해국인 프랑스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정전이나 휴전 없이 ‘다에시’(Daesh·IS가 사용을 금지한 IS의 아랍어 이름)와 싸우겠다”고는 했지만 미-러의 도움 없이는 장기전을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다음 주 워싱턴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행선지를 러시아로 돌려 26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군사작전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반IS 연합군에 가담하게 되면 전쟁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17일부터 IS 거점인 락까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18일에도 러시아는 Tu-95MS 전략폭격기 등 장거리 폭격기 25대를 본토에서 시리아 상공으로 보내 락까 등에 순항미사일 34발을 발사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유럽 최대 항공모함인 ‘샤를드골’함을 19일부터 걸프 만에 전진 배치하면 시리아와 이라크에 산재한 IS 거점들은 ‘융단 폭격’에 가까운 타격을 받게 된다.
국제 정치컨설팅기관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군사 전문매체인 디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수니파인 IS를 공격하면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결과적으로 도와주게 되는 골치 아픈 역설 때문에 미-러가 계속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프랑스, 러시아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면서 IS가 락까 주민들을 볼모로 ‘인간 방패망’을 만드는 등 방어에 치중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한편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사흘간 이어진 프랑스의 락까 공습으로 IS 조직원 33명이 사망했다”고 18일 밝혔다. SOHR는 또 “락까의 IS는 연합군과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를 앞두고 주민 이탈을 막는 한편 조직 지도부와 가족들은 안전한 이라크 모술로 피신시킨다는 보고도 있다”고 전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