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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서천꽃밭을 지키는 신

입력 | 2015-11-21 03:00:00


사람을 살린다는 상상의 꽃 ‘살제비꽃’. 최원오 교수 제공

제주도의 ‘이공본풀이’는 서천꽃밭을 지키는 신의 유래를 내용으로 한 구전신화다. 옛날에 김진국과 원진국이 친구로 지내며 살았는데, 둘 다 자식이 없어서 근심하고 있었다. 하루는 지나가는 스님이 자신의 절에 백 근의 황금을 갖고 와서 공양을 드리면 자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에 김진국은 가난해서 황금 대신 좋은 쌀을 정성껏 씻어 공양을 드리니 아들(원강도령)을 낳았고, 황금을 바친 원진국은 딸(원강암이)을 낳았다. 그리고 자식들이 십오 세가 되자 둘을 결혼시켰다.

원강암이가 임신을 해 배가 항아리같이 불러 오를 때였다. 옥황상제로부터 원강도령 앞으로 편지가 왔다. 서천꽃밭의 관리직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원강도령이 서천꽃밭으로 떠나려는데 부인이 말했다. “날짐승도 부부가 있고 길짐승도 부부가 있는데, 날 홀로 두고 어찌 혼자 갑니까?” 어쩌랴. 서천꽃밭으로 가는 둘의 여정은 멀고도 험했고, 원강암이는 마침내 발병이 났다.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자 남편에게 말했다. “서천꽃밭에 가기도 어렵고 집에 돌아가기도 어려우니 저 건너 김 장자네 집에 종으로나 팔아두고 가십시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나으니 알아서 하시오.” 결국 원강암이는 김 장자네 집의 종이 되었다.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딸을 낳거든 할락덕이, 아들을 낳거든 할락궁이라 이름을 지으시오.” 이별의 문답치고는 참으로 간단하고 애절했다.

원강도령이 빗 한 짝과 참실 한 꾸러미를 부인에게 징표로 주고 떠나자 김 장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원강암이를 찾아와 강압적으로 동침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임신 중이라는 핑계로 거절했지만 할락궁이가 태어나자 더이상은 핑계를 대기가 어려워졌다. 난감해진 원강암이, 김 장자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무지한 장자님아, 주인과 노비는 아버지와 자식과 같은데 어찌 배필을 맺을 수 있으리오?” 김 장자는 분개하며 원강암이를 곧장 죽이려고 들었다. “그 종을 죽이면 되레 해로우니 힘든 일을 많이 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김 장자의 막내딸이 나서서 말렸다. 이후 김 장자는 원강암이와 할락궁이에게 나무하기, 새끼 꼬기, 명주 짜기, 깊은 산중에 들어가 나무 베고 밭 만들어 좁씨 뿌리기 등 온갖 힘든 일을 시키며 핍박했다.

“아, 내 신세여!” 할락궁이는 김 장자네 집에 매두었던 사슴이 도망치자 잡아오겠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헌 집 고치는 사람을 도와주고, 벌레 잡아 굶주린 까마귀 새끼들을 먹여주고, 옥황 선녀의 뚫린 두레박을 고쳐주고 길 안내를 받아 마침내 도착한 서천꽃밭. 할락궁이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빗과 참실을 보여주었다. “내 아들이 분명하구나. 그런데 네가 없어지니 김 장자가 네 어머니를 죽였구나.” 그 말에 슬프고 분한 마음이 든 할락궁이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꽃을 꺾어들고서 말했다. “세상에 나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할락궁이는 김 장자의 일가친척을 모두 모아놓고 먼저 웃음꽃을 내놓았다. 서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음으로 싸움꽃. 서로 싸움을 했다. 마지막으로 살인하는 꽃. 서로 살인하다가 모두 죽었다. 그 후 할락궁이는 어머니의 흩어진 뼈를 모아 꽃으로 다시 살려내 서천꽃밭으로 돌아갔다. “기특하구나.” 아버지는 아들을 칭찬하며 자신의 일을 물려주었다. 가족 차원의 복수와 인간 생사를 주관하는 서천꽃밭 관리직의 대물림. 도대체 이 둘은 무슨 관계일까.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