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린다는 상상의 꽃 ‘살제비꽃’. 최원오 교수 제공
원강암이가 임신을 해 배가 항아리같이 불러 오를 때였다. 옥황상제로부터 원강도령 앞으로 편지가 왔다. 서천꽃밭의 관리직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원강도령이 서천꽃밭으로 떠나려는데 부인이 말했다. “날짐승도 부부가 있고 길짐승도 부부가 있는데, 날 홀로 두고 어찌 혼자 갑니까?” 어쩌랴. 서천꽃밭으로 가는 둘의 여정은 멀고도 험했고, 원강암이는 마침내 발병이 났다. 더이상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자 남편에게 말했다. “서천꽃밭에 가기도 어렵고 집에 돌아가기도 어려우니 저 건너 김 장자네 집에 종으로나 팔아두고 가십시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나으니 알아서 하시오.” 결국 원강암이는 김 장자네 집의 종이 되었다.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딸을 낳거든 할락덕이, 아들을 낳거든 할락궁이라 이름을 지으시오.” 이별의 문답치고는 참으로 간단하고 애절했다.
원강도령이 빗 한 짝과 참실 한 꾸러미를 부인에게 징표로 주고 떠나자 김 장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원강암이를 찾아와 강압적으로 동침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임신 중이라는 핑계로 거절했지만 할락궁이가 태어나자 더이상은 핑계를 대기가 어려워졌다. 난감해진 원강암이, 김 장자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무지한 장자님아, 주인과 노비는 아버지와 자식과 같은데 어찌 배필을 맺을 수 있으리오?” 김 장자는 분개하며 원강암이를 곧장 죽이려고 들었다. “그 종을 죽이면 되레 해로우니 힘든 일을 많이 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김 장자의 막내딸이 나서서 말렸다. 이후 김 장자는 원강암이와 할락궁이에게 나무하기, 새끼 꼬기, 명주 짜기, 깊은 산중에 들어가 나무 베고 밭 만들어 좁씨 뿌리기 등 온갖 힘든 일을 시키며 핍박했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