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 만큼 동지와 정적(政敵) 관계를 넘나든 사람도 드물다.
두 사람은 40여년의 정치인생 동안 민주화 투쟁이라는 한 배를 탔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항상 ‘물과 기름’의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이 직접 대결을 벌인 것은 1968년 신한민주당 원내총무 경선,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1988년 총선, 1992년 대선 등 4차례다.
두 사람은 수 십 년 정치 인생에서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쳤지만 권력에 대한 집념은 YS가 좀 더 강했다는 평이다.
특히 1990년 DJ의 평화민주당을 제외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은 DJ로서는 뼈아픈 사건.
3당 합당을 통해 1992년 거대 여당의 대선후보가 된 YS는 결국 당시 14대 대선에서 DJ를 누르고 승리했다. 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DJ는 이듬해 영국으로 출국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비록 14대 대선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DJ의 설욕전도 ‘정치 9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극적으로 이뤄졌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을 당시 DJ는 노 후보를 사실상 지지했고,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맞붙었을 때는 YS가 이명박 후보를 대놓고 지지했다.
특히 2007년 대선 당시 YS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 등 일부 인사를 제외한 과거 민주계 조직을 대거 이명박 후보 캠프에 포진토록 했고, DJ는 대선구도를 ‘한나라당 대 비(非) 한나라당’ 대결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을 비롯한 당시 범여권 세력의 통합을 주문했다.
정치권에서는 1987년 대선 이후 물과 기름 같았던 두 사람의 화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양 김의 갈등의 골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