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김대중은 쉬운 일을 괜히 어렵게 말해”… ‘애증의 라이벌’ 兩金
1980년 ‘서울의 봄’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타계하면서 6년 전 세상을 떠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주도하던 ‘양김 시대’도 막을 내렸다. 사진은 1980년 2월 서울 종로구 계동 인촌기념관에서 건배를 하는 YS, DJ, 김종필(JP) 전 총리(왼쪽부터). 동아일보DB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10일 당시 DJ가 입원 중이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의 애증(愛憎)이 얽힌 오랜 인연을 압축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자 YS는 “그렇게 봐도 좋다”고 말했다. 8일 후 DJ는 세상을 떠났다. YS와 DJ는 ‘민주화 동지’였지만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YS는 민주당 ‘구파’, DJ는 민주당 ‘신파’의 기대주로 출발했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경선에서 처음 맞붙어 YS가 승리를 차지했다. 2년 뒤 대선후보 경선에서 YS는 ‘40대 기수론’을 처음 내걸었지만 후보 자리는 DJ가 차지했다.
YS와 DJ는 1987년과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격돌했다. 1987년 대선에선 두 사람의 분열에 힘입어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다. 1992년 대선에서 YS가 승리하고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5년 뒤 대선에서 DJ는 4수 끝에 당선했다. 당시 YS가 여당의 DJ 비자금 검찰 수사 요구를 일축한 것이 DJ 당선의 한 요인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