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대통령 서거]정치사 양대산맥 역사 속으로
김영삼(YS) 전 대통령 국가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22일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서고 있다(위쪽 사진). 이날 빈소에는 여야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위쪽에서 두 번째 사진부터 상도동계의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 사진공동취재단
○ 뿔뿔이 흩어진 ‘상도동계’ 1세대
YS의 최측근은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과 김동영 전 정무장관이다. 동국대 동문으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다. 이들로부터 ‘상도동계’가 태동한 셈이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1991년 8월 ‘김영삼 대통령’ 탄생을 불과 1년 반가량 앞두고 암으로 타계했다. 당시 YS는 김 전 장관 빈소에서 “한창 일할 나이(55세)에 유명을 달리해 가슴이 아프다”며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YS 가신그룹의 또 다른 핵심은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이다. 그는 ‘조직의 귀재’로 불리며 YS의 각종 사조직을 이끌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에 반대해 탈당한 뒤 이인제 후보(현 새누리당 최고위원)가 창당한 국민신당에 입당했다. 이후 국민신당과 국민회의가 통합돼 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낸 그는 2009년 12월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수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종웅 전 의원,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홍인길 전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 등도 대표적인 YS맨이다. 전북 익산 출신인 김 전 원내대표는 PK(부산·경남) 인사가 주축인 상도동계의 비주류였지만 ‘호남의 대표성’을 인정받아 상도동계의 핵심 실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면서 여권과 거리가 멀어졌다.
YS맨을 언급할 때 김기수 비서실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YS 임기 내내 수행실장을 맡았고 퇴임 이후에도 줄곧 YS의 곁을 지켰다. 청와대 입성 직후 경내 지리를 모르는 YS가 “기수야 어딨노?”라며 김 실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YS의 빈소를 찾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김 실장을 두고 “변함 없는 충신”이라고 했다.
○ 여전히 건재한 ‘YS맨’들
역설적이게도 김 대표의 정적으로 꼽히는 같은 당 서청원 최고위원도 대표적 YS맨이다. 서 최고위원은 YS가 야당 총재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장관을 맡았다. 그는 YS 빈소에서 “(YS는) 저의 정치적 대부”라고 했다.
김 대표나 서 최고위원은 모두 YS가 1984년 이끌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상도동계와 인연을 맺었다. 정치적 뿌리가 같은 셈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속에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지면서 비박(비박근혜)계의 좌장이 됐다. 반면 서 최고위원은 친박(친박근혜)계의 맏형 역할을 맡아 정치적 현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YS 재임 내내 손명순 여사의 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의원과 당시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이병석 의원과 이성헌 전 의원, 청와대 국장을 지낸 이진복 의원 등도 범상도동계로 분류된다. 현 정부 청와대 인사 가운데도 김동영 전 장관 보좌관을 지낸 신동철 정무비서관과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등을 범상도동계로 볼 수 있다.
○ ‘영원한 라이벌’ 동교동계도 애도
YS와 함께 민추협을 결성한 새정치연합 김상현 상임고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YS와 특별한 관계여서 마음이 더 아프다”며 “YS와 DJ가 갈등의 시기도 있었지만, 모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은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