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대통령 서거/추모사]
박관용 재외동포재단 자문위원장·전 국회의장
23년 전 김영삼 대통령님이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시기 직전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당신은 저를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으로 부르셨습니다. 당신은 대뜸 “비서실장을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감히 즉석에서 못 한다고 말씀 올렸습니다. 행정 경험도 없고 대안제시 능력도 없어서 오히려 대통령께 누가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보름 뒤 또 저를 부르셨습니다. 상도동에서 마주앉은 당신은 이번에는 “대통령의 명령”이라고 하시며 비서실장을 맡으라고 강권하셨습니다.
남들이 다 하고 싶어 하는 대통령비서실장 직을 마다한 제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집권한 뒤에는 진정한 개혁을 추진해야 하고 그것도 야당 시절 외쳤던 민주화를 완성시켜야 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과업이 저를 두렵게 만들어 한 달 정도를 피해 다닌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려움을 떨쳐내야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님을 모시고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것이 저의 역사적 소임이라고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1979년 신민당의 5·30 전당대회에 총재로 출마하셨을 때가 저와 김영삼 대통령님 간의 인연이 굳어진 시기였습니다. 총재로 당선되셨지만 곧이어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민주화가 됐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님과 함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위해 서울로, 부산으로, 광주로 뛰어다니며 젊은 시절을 보낸 일은 지금도 저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님이 투병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저 스스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제 막상 떠나가셨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니 우리 정치사의 한 세대가 역사 속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영삼 대통령님께서는 취임 연설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 ‘금세기 안에 조국은 통일되어 자유와 평화의 고향땅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한반도에 통일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민주화의 남은 과업이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남은 힘을 조국의 통일에 기울이겠다는 다짐을 영전에 바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민족의 앞날을 지켜봐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