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201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재명 기자
YS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온갖 유머가 넘친다. 사투리 때문에 오해를 부른 경우가 많았다. “제주도를 국제적 ‘강간도시’(관광도시를 잘못 발음함)로 만들겠다”고 말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2003년 11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검 거부에 항의해 단식에 들어가자 최 대표를 찾은 YS의 한마디는 압권이었다. “굶으면 죽는 것은 학실(확실)하데이.” 누구는 YS가 ‘읽은 책’보다 ‘쓴 책’이 더 많을 것이란 농담도 한다.
그럼에도 YS는 ‘민주화 투사’를 넘어 ‘개혁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혁명보다 힘들다는 개혁을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첫 번째 충격은 ‘공직자 재산공개’였다. YS는 대통령 취임 사흘째인 1993년 2월 27일 자신의 재산부터 공개했다. 개혁은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희생에서 시작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국민은 그때서야 알게 됐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당시 집권여당은 수도권에서 선전했지만 과반수에 미달하는 139석을 얻었다. 그러자 과반인 150석을 채우려 야당 의원 ‘빼가기’에 나섰다. 1996년 5월 서울 보라매공원에선 이후 정치사를 뒤바꿀 ‘역사적 집회’가 열린다. 바로 ‘유신의 피해자’ 김대중(DJ)과 ‘유신의 본당’ 김종필(JP)이 손을 잡고 YS의 인위적 정계개편을 규탄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DJ는 “김종필 총재와 내가 한자리에 서서 연설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독재가 우리를 손잡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보수우파에 ‘잃어버린 10년’을 안긴 DJP 공조의 서막은 그렇게 열렸다.
YS 서거는 그의 시대를 넘어 ‘양김 시대’의 명암을 새롭게 조명할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박 대통령에게도 자신의 시대를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점점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우파는 박 대통령의 ‘좌파와의 전쟁’에 열광한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21일 경찰은 민주노총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이 전쟁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전교조의 노조활동 제한에 이어 ‘좌파의 본산’인 민주노총 무력화에 나선 것이다. 2013년 11월 박 대통령 해외순방 중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청구를 국무회의에서 의결토록 한 것과 빼닮았다. 순방 성과 홍보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지만 ‘좌파와의 전쟁’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준 셈이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가전복을 꿈꾸는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순 없다. 그렇다고 그 세력을 힘으로 몰아내기도 쉽지 않다. 이미 해산된 통진당의 잔존세력은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그들은 청년들의 불안과 불만을 지렛대 삼아 박근혜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노동개혁 좌초는 그들의 1차 목표다. 그 와중에 YS 서거라는 돌발 변수가 터졌다. 좌파로선 ‘공안탄압’ 여론몰이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노동개혁의 불씨가 언젠가 저절로 살아날 거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