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이워스 작 메리 1세 여왕의 초상화
플랑드르 화가이면서 영국에서 활약했던 한스 이워스(Hans Eworth)가 그린 메리의 초상화에는 의상과 장신구의 화려함까지 얼어붙게 하는 냉혹한 그녀의 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별처럼 떠 있는 펜던트는 그녀의 강한 기(氣)를 제압하며 더 도도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남편이 된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약혼 선물로 준 서양 배 모양의 대형 진주,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 때문이다. 1503년 파나마 만(灣)에서 흑인 노예가 발견한 페레그리나는 223.8그레인(11.2g)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진주가 되었다. ‘방랑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진주는 그 파란만장함이 굴곡 많은 여인의 삶 못지않다. 메리 사후 스페인 왕실의 여인들을 빛내던 페레그리나는 1808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프랑스로 가져와 나폴레옹 3세가 소유했다. 그는 왕정이 무너지면서 영국으로 망명할 때 이를 가져갔다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았다. 20세기 초까지 영국 공작이 소유하다가 1969년 홀연히 경매에 나와 리처드 버턴이 3만7000달러에 구입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 그녀가 죽은 뒤 이 진주는 2011년 다시 경매에 나와 11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으로 팔렸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