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문화부 기자
이 요괴 거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사카이미나토 시는 1960년대 ‘산인 지역(시마네 현과 돗토리 현을 일컫는 말)의 오사카’로 불릴 만큼 번영했지만 갈수록 지역 경제가 위축되며 폐점하는 점포가 늘었다. 30여 년 전부터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부활의 움직임이 일었고 이 지역 출신인 미즈키 시게루가 자신의 캐릭터를 내놓으며 길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인구는 3만5000명인데 연간 관광객 수가 300만 명에 이른다. 한가한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부활시킨 관광도시의 역할모델로 꼽힌다. 최근 사카이미나토 시는 추가 개발 계획을 밝혔으며 길 입구에는 최신식 호텔이 개장을 앞두고 있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보고 남을 곳이지만 줄지어 선 상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일본인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무엇보다 하나의 캐릭터를 파고들어 기상천외한 상품들로 확장시키는 능력은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모범사례로 불릴 만하다. 예를 들어, 만화 속 눈알 아저씨 캐릭터는 티셔츠나 열쇠고리, 탄생석 같은 기념품뿐만 아니라 눈알경단, 눈알비타민, 눈알케이크 등 여러 먹을거리 상품으로 변주됐다. 게다가 택시 전광판과 가로등에까지 이 눈알 아저씨가 그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이 요괴거리를 본보기 삼아 명동과 남산 사이에 450m 길이의 ‘재미로’가 조성되고 있다. 2013년부터 서울시 주도로 뽀로로,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좀비덤, 달려라 하니 등 30여 개 토종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골목길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현재까지 80여 개 간판을 교체했으며 참여하는 캐릭터도 늘릴 계획이다.
국산 캐릭터들의 백화점처럼 온갖 캐릭터들이 모여 있어 볼거리가 많은 반면, 여러 캐릭터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어 아쉬웠다. 재미로를 끝까지 걸으면 나오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이 캐릭터들이 처음 개발된 고향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요괴거리가 지금의 외관을 갖추는 데 30년이 걸렸으니 재미로의 성공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단, 다양한 캐릭터의 물량 공세만이 삭막했던 거리를 관광자원으로 활성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염희진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