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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 ‘창조경제’ 예산도 우왕좌왕…531건 중 33건 유사·중복사업

입력 | 2015-11-24 14:25:00

[주간동아 1014호/특집 | 2016년도 예산안 꼼꼼 분석]
국회 시정 요구에 도리어 증액도




박근혜 정부는 유독 사물인터넷(IoT)을 사랑한다. 2016년도 예산안에서 사물인터넷 관련 사업의 유사·중복성 지적이 많았다. 사진은 3월 30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의 모습. 

연말이 다가오는 이맘때면 사람들은 내년도 다이어리를 준비한다. 문구점 등에서 구매하는 사람도 있고, 모 카페에서 경품으로 주는 다이어리 획득에 혈안이 되는 사람도 많다. 종종 내년도 다이어리를 미리 사뒀는데 주변으로부터 더 괜찮은 것을 선물받기도 한다. 얼마 전에 사뒀다는 걸 잊고 또 사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있다. 특정 해에만 쓸 수 있다는 다이어리의 특성을 생각하면 참 아까운 일이다.

정부 예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산안이 한 번 통과되면 엄격하게 집행되기 때문에 최초에 면밀한 산정과 평가를 필요로 한다. 유사·중복사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돈이 아까워서만은 아니다. 같은 분야에 비슷한 취지로 각기 다른 사업을 통해 국고를 지출하면 관리도 비효율적이 되기 십상이다. 사업에 따른 수혜를 중복으로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 형평성에도 해가 된다.

‘증세 없는 복지’를 기조로 삼아 예산 확장에 제약이 많은 박근혜 정부 처지에서 유사·중복사업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를 알고 노력한다. 기획재정부(기재부)는 10월 말 ‘유사·중복사업 감축 목표 조기에 초과 달성’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사·중복사업 689개를 감축해 2500억 원 예산을 절감했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빈틈은 많이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예산처) 2016년도 예산안을 살펴본 결과가 그렇다. 예산처는 2016년 예산안 사업 중 531건에 대해 분석을 실시했으며 총 33건이 사업 목표, 사업 내용, 지원 대상이 유사하거나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지었다. 유사·중복사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다. 유사·중복사업 수가 각기 6건씩으로 가장 많고, 심지어 두 부서의 사업 중에서도 유사·중복성이 지적되고 있다(표1 참조).

미래부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부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준비해온 창조경제의 주체이고 새 정부 조직의 핵심 중 핵심’이라는 청와대의 화려한 수사에도 미래부는 설립 당시 “업무(분장) 영역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는 여전히 그 의미가 뚜렷하지 않은 ‘창조경제’ 탓도 크다. 이 때문일까, 미래부 사업 가운데 유사·중복사업으로 지적된 것은 창조경제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미래부의 ‘액셀러레이터 연계 지원’은 중소기업청의 ‘창업맞춤형 사업화’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란 초기 창업자를 선발해 짧은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보육하는 기관이나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초기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해 멘토링과 투자 지원으로 창업 성공률을 높이고 성장을 가속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 사업은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발굴한 아이디어가 사업화될 수 있도록, 멘토링 등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사업화 자금의 일부를 지원한다.


‘창조경제’ 주체 미래부 업무 여전히 모호

중소기업청에도 비슷한 내용의 ‘창업맞춤형 사업화’가 있다. 이 또한 액셀러레이터와 3년 미만 창업기업을 연계해 수익모델 개발, 아이템 검증 및 보강 등을 지원한다. 2016년도 예산안에 미래부 사업은 91억 원이 책정됐고 중소기업청 사업에는 222억 원이 책정됐다. 예산처는 “두 사업 모두 액셀러레이터를 활용해 벤처·창업기업을 지원한다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에 두 부처가 “액셀러레이터에 의한 멘토링 및 자금 지원을 수행함에 각 부처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연계·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래부 추진 사업 내에서도 유사·중복성이 지적됐다. ‘사물인터넷 신산업 육성 선도’와 ‘사물인터넷 활성화 기반조성’ 사업이다(표2 참조). 제목부터 유사한 두 사업의 내용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사물인터넷 신산업 육성 선도’(70억여 원)는 사물인터넷 서비스 검증·확산을 위해 개방형 플랫폼을 활용한 서비스 시범사업과 스마트센서 서비스 검증·확산 사업을 추진하며, 사물인터넷을 융합한 제품의 상용화와 해외 진출 지원, 사물인터넷 수요·공급기업의 현장 애로기술을 지원한다. 한편 ‘사물인터넷 활성화 기반조성’(93억여 원)은 사물인터넷 서비스의 발굴·확산과 안전한 사물인터넷 이용 기반 조성을 수행한다.

이 두 사업에서 다른 점은 단 하나, 바로 재원이다. ‘사물인터넷 신산업 육성 선도’는 일반회계를 재원으로 한다. 일반회계란 국가 고유의 일반적 재정활동, 다시 말해 조세 수입 등으로 이뤄진 예산을 의미한다. 반면 ‘사물인터넷 활성화 기반조성’은 방송통신발전기금이라는 별도 재원으로 수행한다. 이 기금은 주로 방송사업자들로부터 징수하는 법정부담금으로 이뤄진다. 예산처는 “유사 내용의 사업이 별도 재원으로 수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는 “사물인터넷에 대한 정부 지원의 총량 파악과 성과 확인을 어렵게 하므로 두 사업의 통합 등 효율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부의 유사·중복성 지적 사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이다. 산업부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을 ‘우수기술연구센터’로 지정하고 기술개발 과제를 지원하는 ‘우수기술연구센터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의 다른 R&D 지원과 대상이 중복된다는 분석이다. 이 사업은 규모가 큰 기업 가운데 R&D 투자에 적극적이고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을 선정해 지원한다.


받은 기업 또 받고…R&D 지원 실태


이는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다른 R&D 지원 사업에 비해 성과가 좋다. 반면 별도의 정부 지원 없이도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에게 과도한 지원을 하는 결과가 된다. 예산처 분석에 따르면 이 사업이 2015년 지원한 35개 기업 가운데 30개는 2012~2014년 최소 1회 이상 다른 R&D 사업을 통해 총 567억 원가량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특히 지원 기업 중 S모사는 이 기간 정부 연구비로만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지원받았다. 또한 이 사업에서 지원하는 기업이 다른 R&D 사업을 통해 같은 연도에 중복 지원을 받은 경우가 절반 이상(58%)이었다.

산업부와 미래부 사이에서 유사·중복성이 지적된 사업도 있다. 원자력 안전 분야에 대한 R&D 지원 사업이다. 산업부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재원으로 ‘원자력 핵심기술개발’ 사업을, 미래부는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을 재원으로 ‘원자력 기술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여기에 공통적으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향상하기 위한 기술개발 사업이 포함돼 있다. 두 사업에 책정된 예산액은 산업부가 521억여 원, 미래부가 367억여 원이다(표3 참조). 예산처는 “두 부처의 원자력 안전에 관한 연구 목적은 ‘중대 사고 대처 등을 위한 원자력의 안전성 강화’로 유사하므로, 예산의 효율적 투자를 위해 부처 간 연계를 통한 중복 방지와 안전성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국회는 매년 국가 예산을 결산하면서 시정사항들을 제시한다. 우리 법은 정부가 시정사항을 지체 없이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 ‘결산의 심사 결과 위법 또는 부당한 사항이 있는 때 (중략) 정부 또는 해당 기관은 시정요구를 받은 사항을 지체 없이 처리하여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국회법 제84조 2항).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유사·중복으로 시정을 요구받아 감액 또는 미편성한 사업도 있지만 도리어 예산이 늘어난 사업도 있다.

이러한 사업은 대통령 관심 사업이거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미래부는 여기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유사·중복으로 국회가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미래부의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사업은 2016년도 예산안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14회계연도 결산심사소위원회는 이 사업과 미래부의 ‘u-IT신기술검증확산’ 사업에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u-IT신기술검증확산은 사물인터넷(IoT) 기술 확산 및 기업 지원 사업이다. 그러나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에도 ‘사물인터넷 활성화 기반조성’이 포함돼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 확산 등을 지원하는 유사사업이 별도로 편성되고 있어 사업 간 중복이나 비효율 발생이 우려된다”는 것이 국회 측 지적이다. 국회는 “사물인터넷 기술개발 지원·육성 등에 관한 사업을 단일 사업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미래부는 u-IT신기술검증확산 사업의 예산은 줄이면서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사업의 예산을 대폭 늘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u-IT신기술검증확산 사업의 예산은 2014년 92억 원에서 2016년도 예산안에서는 70억 원으로 22% 정도 줄었다. 반면 차세대 인터넷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 사업의 예산은 2014년 34억 원가량이었다 2016년도 예산안에서는 93억 원으로 편성, 174% 증가해 유사·중복으로 인한 시정요구 사업 가운데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고용 창출과 관련된 사업 역시 국회의 지적에도 예산이 크게 늘었다. 고용노동부의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은 근무체계를 개편하거나 새로운 직무를 개발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주에게 인건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교대제 개편과 근로시간 단축 같은 근무 형태 변경, 고용환경 개선 등으로 고용 기회를 확대한 기업을 지원하는 ‘고용창출지원’과 그 취지 및 내용이 비슷하다. 국회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도 고용 창출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 사업의 구분이 명확지 않으며, 각 세부 사업에 포함된 인건비 지원 등은 유사·중복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이 사업은 집행률이 낮아 항상 예산이 남았다. 2014회계연도 결산 결과,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에 배정된 예산 227억 원 가운데 161억 원만 써 30%가량을 불용했다. 그런데 2016년도 예산안에는 같은 사업에 462억 원을 배정해 103% 증가율을 보였다.

유사·중복 시정하랬더니 도리어 증액도

정부 주요 시책이 아님에도 국회의 시정요구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편성한 사업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축산분뇨처리시설’ 사업이다. 환경부에도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 사업이 있는데 실질적인 내용이 가축 분뇨를 퇴비화, 에너지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회는 “동일 대상에 대한 유사 업무가 2개 부처로 이원화돼 추진됨에 따라 시설 설치과정에서 지역 내 가축분뇨처리시설의 중복투자 또는 과다투자가 발생할 여지가 있고, 업무 영역의 중복에 따른 정책의 통일성, 효과성 또한 저해될 우려가 있다”면서 “해당 사업과 환경부의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 사업이 유사·중복되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했다. 이 사업 또한 연례적으로 집행 실적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도 예산안에서는 단 0.8% 감액된 960억 원이 책정됐다.

예산처 분석 결과는 ‘유사·중복사업 감축을 목표 초과 달성했다’는 기재부를 머쓱하게 만들 만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당 유사·중복사업 감축안에 대해 “국무조정실 산하에서 태스크포스(TF)팀을 조직해 각 부처 담당자들이 집계하고 예산실의 검토를 거쳤다”고 말했다. 예산처의 분석 결과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답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11월 10일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창조경제-미래를 위한 사명’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위). 국회 예산결산소위원회가 파행 나흘 만인 11월 16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감액심사에 들어갔다.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1.25.~12.01|1014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